서원건축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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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건축의 백미

병산서원 만대루 [남윤호]

병산서원

 

 

카랑카랑했던 옛 선비의 기품 그대로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건물이 병산서원이다.

병산서원이 이 같은 명성을 얻은 이유는 바로 만대루(晩對樓)가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 이름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한 구절 인

 

'취병의만대 /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 白谷會深遊)',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 하고,

흰 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이 즐기기 좋구나."

에서 따온 말로, 맞은편의 깎아지른 절벽인 병산(屛 山)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군데군데 늙은 소나무가 서 있는 하얀 모래밭, 그 사이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강물, 오랜 세월의 이끼가 그림처럼 묻어 있는 절벽, 그 틈 사이로 어렵사리 뿌리를 내려 애절하기까지 느껴지는 관목들, 그 너머 푸른 하늘. 그 모든 것들을 서원의 앞마당으로 끌어 당겨 놓은 듯하다.

 

어느 날, 어느 때라도 그곳에서 앉아 보는 풍경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수차례의 답사 가운데 이슬비가 촉촉히 내리던 날의 그 경관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계자난간에 팔을 걸치고 느긋이 강물을 바라 보기도 하고, 누마루에 누워 귀를 세워 빗소리를 듣는 평온함과 정겨움이란 느껴보지 못한 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우람한 건물인 만대루는 멀리서 보면 카랑카랑한 선비의 기질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맞은편 입교당에서도 주변 풍광을 향한 시야를 전혀 가리지 않고 시선의 한끝에 이 건물을 잡아둠으로써 주변 경관을 한 품격 더 높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의 스승인 서애 선생을 위해 이 서원을 짓는데 앞장 선 우복 정경세(1563~1633)의 안목에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만대루의 아름다움은 건물의 위용 보다는 자연스러움이다. 누마루 아래를 내려서면 휘어진 그 모습대로의 굵은 기둥이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목재를 새로 다듬지 않아 각기 다른 모습이다. 인공의 냄새는 전혀 없다.

 

건물은 그냥 자연의 일부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도 정질 한번 주지 않은 생긴 모양 그대로이다. 본래 그곳에 있던 돌같은 느낌을 준다. 주춧돌로 쓰기에는 황당하리만큼 큰 돌을 두기도 하고, 기둥을 일부러 주춧돌의 한 쪽 귀퉁이에 세우기도 한다. 기둥과 주춧돌 사이가 맞지 않으면 그냥 나무쐐기를 박았다.

 

"건물은 그냥 자연의 일부"라는 우리 조상들의 건축의식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 같은 생각이 빚어 놓은 때문인지 그 오래된 건물의 목재에 또 다시 파란 새싹이 돋아날 듯 한 분위기를 풍긴다.

 

누마루를 오르는 나무 계단도 우리의 눈길을 끈다. 큰 통나무를 도끼질 로 서너곳 잘라 내어 계단으로 삼았다. 그 자연스러운 느낌과 발을 디딜 때의 독특한 촉감은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흥분과 함께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만대루 건축미의 백미는 아무래도 누워서 보는 들보의 물결이다. 앞마당 의 낙동강을 건물 천장에 옮겨 걸어 놓은 듯 가늘게 일렁이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앉아서 지켜보던 그 강물을 누워서도 즐기려 한 것일까.

 

항상 강을 안고 살아가려 한 조상들의 삶의 태도가 그립다. 그 가슴속의 강은 세상의 온갖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주는 신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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