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1. 일본국사日本國使 귤강광橘康廣이 다녀감

  • 관리자
  • 2021-06-16 오전 9: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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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국사日本國使 귤강광橘康廣이 다녀감

만력萬曆1) 병술년(1586) 무렵에 일본국日本國사신使臣귤강광橘康廣이 그 국왕國王

평수길平秀吉2)의 서신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다.

처음에 일본 국왕 원씨源氏3)가 나라를 홍무洪武4) 초기에 세우고, 우리나라와 선

린 우호 관계를 맺은 지가 거의 2백년이 되었다. 그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역

시 사신을 파견하여 경조慶弔5)의 예절을 닦았는데, 신숙주申叔舟6)가 서장관書狀官7)으

로 왕래한 것이 곧 그 한 가지 예다. 그 뒤 신숙주가 죽음에 임하였을 때, 성종成

宗8)께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라고 물으시니, 신숙주는 대답하기를,

“원하옵건대 우리나라는 일본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소서.”

라고 하였다. 성종께서는 그 말을 감동되어 부제학副提學9) 이형원李亨元과 서장관

書狀官김흔金訢에게 명하여 일본에 가서 화목을 도모하고 오게 하여 대마도對馬島10)

에 이르렀는데, 사신들은 풍랑으로 해서 놀라 병을 얻을까 근심하여 글을 올려

그 상황을 보고하니, 성종께서는 서신과 예물[書幣]을 대마도주[島主]에게 전하고

서 돌아오라고 명령하셨다. 이로부터는 다시 사신을 파견하지 않고, 늘 그 나라에

서 사신이 올 때마다 예절에 따라서 대접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평수길平秀吉은 원씨源氏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평수길

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는 본래 중국 사람인데 왜국倭國11)으로 떠돌아 들어가 나무를 해다가 팔아 생활을

하였다. 하루는 국왕國王12)이 밖에 나왔다가 그를 길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됨이 남다르

므로 불러서 자기 군대에 편입시켰더니, 그는 용감하고 힘이 세어 잘 싸우고 공을 쌓아

대관大官에까지 이르고, 인하여 권력을 잡게 되어 마침내 원씨의 자리를 빼앗고 그를 대

신하여 왕이 되었다.”

라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원씨源氏가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당하자, 평수길이 또 그 사람을 죽이고 나라

를 빼앗았다.”

라고하기도 한다.

평수길은 병력을 사용하여 여러 섬을 평정하고, 국내의 66주州를 통합하여 하나

로 만들고는 드디어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는 뜻을 가졌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사신은 늘 조선朝鮮에 가는데도 조선 사신은 오지 않으니 이는 곧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접하여 기생들의 음악과 노래와 춤이 어울렸는데, 귤강광은 송응형이 노쇠하고 백

발인 것을 보고 통역관으로 하여금 그에게 말하기를,

“이 늙은이는 여러 해 동안 전쟁하는 마당에 있었으므로 수염과 머리털이 다

희어졌지만, 사군使君17)께서는 아름다운 기생들 틈에서 온갖 근심할 것이 없이 지

냈겠는데도 오히려 백발이 되었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그를 풍자한 말이다.

귤강광이 서울에 이르자, 예조판서禮曹判書18)가 잔치를 베풀고 대접하였다. 술이

취하자 귤강광이 호초胡椒19)를 자리 위에 헤쳐놓으니 기생과 악공들이 그것을 다

투어 줍느라고 좌석의 질서가 걷잡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귤강광은 객관으로

돌아와 탄식하며 통역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망하겠다. 기강紀綱이 이미 허물어졌으니 망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가 돌아갈 때 우리 조정에서는 다만 그 서신에 회답하여 “물길

에 어두움으로 해서 사신을 파견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귤강광이

돌아가서 보고하니, 평수길은 크게 노하여 귤강광을 죽이고 또 그 일족을 멸망시

켰는데, 대개 귤강광은 그 형 강년康年과 함께 원씨源氏때부터 우리나라에 내조來朝

하여 직명職名을 받았으므로, 그의 말이 자못 우리나라의 처지를 위해서 하였던 까

닭으로 평수길에게 죽은 바 되었다고 이른다.

라 하고, 드디어는 귤강광으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와서 통신사通信使를 보낼 것을 요구

했는데, 그 사신의 언사가 매우 거만하였으니 “이제 천하가 짐朕의 한 손아귀에 돌아올

것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때는 대개 원씨가 망한지 이미 10여 년이 되었는데, 여러

섬에 사는 왜인倭人들이 해마다 우리나라를 왕래하고 있지만, 그 명령의 엄중함을 두려

워하여 누설하지 않은 까닭으로 조정에서는 일본의 정세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귤강광은 이때 나이가 50여 세로 용모가 장대하고 수염과 머리털이 반백이었

다. 그는 지나는 관역館驛13)마다 반드시 좋은 방에서 묵고 행동이 거만하여 여느

때의 왜국 사신과는 아주 다르므로 사람들은 자못 괴상하게 여겼다. 우리나라의

풍습으로 대개 왜국 사신을 맞게 되면 한길가의 군읍郡邑에서는 그 지경 안의 장

정을 동원하여 창을 잡고 길가에 늘어서서 군사의 위엄을 보였었는데, 귤강광은

인동仁同14)을 지나다가 창을 잡고 있는 사람을 흘겨보고는 웃으며 말하기를,

“너희들의 창자루는 아주 짧구나.”

라고 하였다. 그가 상주尙州15)에 이르렀을 때, 목사牧使16) 송응형宋應泂이 그를 대

접하여 기생들의 음악과 노래와 춤이 어울렸는데, 귤강광은 송응형이 노쇠하고 백

발인 것을 보고 통역관으로 하여금 그에게 말하기를,

“이 늙은이는 여러 해 동안 전쟁하는 마당에 있었으므로 수염과 머리털이 다

희어졌지만, 사군使君17)께서는 아름다운 기생들 틈에서 온갖 근심할 것이 없이 지

냈겠는데도 오히려 백발이 되었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그를 풍자한 말이다.

귤강광이 서울에 이르자, 예조판서禮曹判書18)가 잔치를 베풀고 대접하였다. 술이

취하자 귤강광이 호초胡椒19)를 자리 위에 헤쳐놓으니 기생과 악공들이 그것을 다

투어 줍느라고 좌석의 질서가 걷잡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귤강광은 객관으로

돌아와 탄식하며 통역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망하겠다. 기강紀綱이 이미 허물어졌으니 망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가 돌아갈 때 우리 조정에서는 다만 그 서신에 회답하여 “물길

에 어두움으로 해서 사신을 파견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귤강광이

돌아가서 보고하니, 평수길은 크게 노하여 귤강광을 죽이고 또 그 일족을 멸망시

켰는데, 대개 귤강광은 그 형 강년康年과 함께 원씨源氏때부터 우리나라에 내조來朝

하여 직명職名을 받았으므로, 그의 말이 자못 우리나라의 처지를 위해서 하였던 까

닭으로 평수길에게 죽은 바 되었다고 이른다.

 

1) 萬曆: 명나라 신종 때의 연호. 병술년은 만력 14년, 곧 우리나라 선조 19년(1586)이다.

2) 平秀吉: 풍신수길(豐臣秀吉)을 말함. 당시 일본 막부의 관백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

3) 源氏: 실정막부(室町幕府)의 끝 장군 족리의소(足利義昭)를 가리킴. 또는 직전신장(織田信長)이라고도 함.

4) 洪武: 명태조[朱元璋]때의 연호

5) 慶弔: 경사(慶事)와 상사(喪事)

6) 申叔舟(1417~1475) : 조선조 초기의 문신. 자는 범옹(泛翁), 호는 보한재(保閑齋), 시호(諡號)는 문충(文

忠), 본관은 고령(高靈).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副修撰)이 되고, 세조 때 정랑공신이

되고 벼슬이 영의정에 이름. 세종 때 서장관(書狀官)으로 일본에 가서 시명을 떨치고 대마도주와 계해

조약을 맺음. 저술에 􋺷보한재집(保閑齋集)􋺸,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등이 있음

7) 書狀官: 외국에 보내는 사신의 한 사람으로, 상사 ․ 부사 ․ 서장관을 삼사라고 함. 그 직책은 서장

등 문서관계에 일을 맡아봄

8) 成宗: 조선조 제9대 임금

9) 副提學: 조선조 때의 관직, 홍문관에 속한 정 3품 벼슬로 제학의 다음, 직제학(直提學)의 윗자리인

데 정원은 1명이었다.

10) 對馬島: 지명. 우리나라 남단과 일본 구주의 해협에 있는 섬으로, 고려 말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우리가 내어주는 곡식을 받아가는 관계에 있었다.

11) 倭國: 일본의 옛 이름

12) 國王: 실정막부의 마지막 장군 족리의소 또는 직전신장을 가리킴

13) 館驛: 역에 마련된 객관

14) 仁同: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는 지명

15) 尙州: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요지

16) 牧使: 조선조 때의 지방관직. 전국 8도에 두었던 정 3품 벼슬로서 각 고을의 으뜸벼슬이었다.

17) 使君: 나라의 일로 외방에 나와 있거나 나라의 사명을 받들고 있는 관원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

여기서는 목사를 지칭함

18) 禮曹判書: 조선조 때의 관청인 예조의 판서로 정 2품 벼슬

19) 胡椒: 열대지방에 생산되는 향목의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