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13. 상주尙州 싸움에서 이일李鎰이 패주함

  • 관리자
  • 2021-07-03 오후 5: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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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상주尙州를 함락시키니, 순변사巡邊使이일李鎰은 싸움에 패해 도망하여 충

주忠州로 돌아왔다.

이보다 먼저 경상도순찰사慶尙道巡察使118) 김수金睟는 왜적의 변고를 듣고서 곧 􋺷

제승방략制勝方略􋺸의 분군법分軍法에 의거하여 여러 고을에 공문을 보내어 각각 소속

된 군사를 거느리고 약속한 곳에 모여 주둔하고 있으면서 서울에서 파견하는 장

수가 이르는 것을 기다리게 하였다. 이에 따라 문경聞慶이하의 수령守令들은 모두

그 소속된 군사를 거느리고 대구大丘로 나아가 냇가에서 노숙을 하면서 순변사를

기다린 지 벌써 며칠이 되었으나 순변사는 오지 않고 적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므

로, 모든 군사들은 스스로 서로 놀라며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마침 큰 비가

와서 옷가지가 다 젖고 먹을 양식도 이어지지 않아 떨어지니, 밤중에 다 흩어져

버리고 수령들도 모두 저 혼자 도망하여 버렸다.

이때 순변사巡邊使(이일李鎰)가 문경聞慶으로 들어왔는데 고을은 이미 텅 비어 있

어 한 사람도 볼 수 없었으므로 자신이 창고에 있던 곡식을 풀어내어 거느리고

온 사람들을 밥 먹였다. 그리고 함창咸昌을 지나 상주尙州에 이르렀는데, 상주목사尙

州牧使김해金邂는 순변사를 출참出站119)에서 기다리겠다고 핑계하고는 산속으로 도

망하여 들어가고, 홀로 판관判官120) 권길權吉이 고을을 지키고 있었다. 이일은 고을

에 군사가 없다고 해서 권길을 책망하고, 그를 뜰로 끌어내어 목을 베어 죽이려

고 하니, 권길은 자기가 스스로 나아가서 군사를 불러 모아오겠다고 애원하여 허

락하였는데, 밤새도록 마을 안을 수색하여 이튿날 아침까지 수백명을 데리고 왔으

나 모두 농민들이었다.

이일은 상주에 하루를 묵으면서 창고 안에 있는 곡식을 꺼내어 흩어져 있는 백

성들을 달래어 나오도록 하니, 산골짜기로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모여와서 또 한

수백 명이 되었다. 이래가지고 창졸간에 대오를 편성하여 군사를 만들었으나, 한

사람도 싸울 만한 사람은 없었다.

이때 왜적은 이미 선산善山에 이르렀다. 저녁 때 개령開寧사람이 와서 적이 가까

이 왔다고 알렸는데, 이일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여

곧 목을 베어 죽이려고 하였더니, 그 사람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잠시 동안만 나를 가두어 두소서. 내일 아침에 적이

오지 않거든 죽이시오. 그래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날 밤에 왜적은 장천長川에 와서 주둔하였는데, 그곳은 상주와 20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이일은 군사는 척후병斥候兵이 없었으므로, 왜적이 가까이

온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에 이일은 그래도 적이 온 사실이 없지

않느냐고 하면서 개령 사람을 옥獄에서 끌어내어 먹을 베어 여러 사람들에게 조리

돌렸다.

인하여 이일은 얻은 바 민군民軍과 서울에서 데리고 온 장병을 합하여 겨우 8,

9백명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는 이들을 데리고 나가 진 치는 법을 북천 냇가에서

가르쳤는데, 산을 의지하여 진을 만들고, 진 한가운데 대장기大將旗를 꽂아놓고, 이

일은 말 위에 앉아 대장기 밑에 서고 종사관從事官윤섬尹暹121) ․

박호朴箎와 판관判官권길權吉과 사근찰방沙斤察訪122) 김종무金宗武등은

모두 말에서 내려 이일의 말 뒤에 섰다.

조금 뒤에 몇 사람이 숲속 나무 사이로부터 나와서 서성거리며 이 광경을 바라

보다가 돌아가 버렸다. 여러 사람들은 이들이 적의 척후인가 의심하였으나, 그러

나 개령開寧사람의 일을 경계하여 감히 알리지를 못하였다. 이어 또 성안을 바라

보니 몇 곳에서 연기가 일어났다. 이일은 비로소 군관軍官한 사람을 시켜 곧 가

서 살펴보고 오게 하였다. 군관이 말을 타고 두 역졸驛卒이 말 재갈을 잡고 느릿

느릿 가는데, 왜적이 먼저 다리 밑에 숨어 있다가 조총鳥銃으로 군관을 쏘아 말에

서 떨어뜨리고 목을 베어 가지고 달아났다. 우리 군사들은 이것을 바라보고 그만

맥이 빠져 버렸다. 조금 뒤에 왜적이 크게 몰려와서 조총鳥銃10여 자루로 막 쏘

아대니 총에 맞은 사람은 즉시 쓰러져 죽었다. 이일은 급히 군사들을 불러 활을

쏘라고 소리 질렀으나, 화살은 수십보를 나가다가 뚝 떨어지니 이것으로서는 적을

죽일 수가 없었다. 이때 적은 이미 좌익左翼․ 우익右翼으로 나눠 벌여 세우고 깃발

을 들고 우리 군대의 뒤를 둘러 포위하고 달려 들어왔다. 이일은 사세가 위급하

게 된 것을 알고 급히 말머리를 돌려 북쪽을 향하여 달아나니, 군사들이 크게 어

지러워져 제각기 목숨을 건지려고 도망하였으나 위험을 벗어나 살아간 사람은 몇

사람도 없었고, 그 종사관 이하 미처 말을 타지 못한 사람은 모두 적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왜적들은 이일을 다급하게 뒤쫓으니, 이일은 말을 버리고 의복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풀어 제치고는 알몸으로 달아나서 문경聞慶123)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에서

종이와 붓을 구하여 그 패전한 상황을 임금에게 급히 아뢰고 물러가서 조령鳥嶺을

지키려고 하다가 신립申砬이 충주忠州124)에 있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충주로 달려

갔다.

 

 

118) 慶尙道巡察使: 조선조 때 지방장관인 관찰사가 겸한 관직으로, 종 2품 벼슬로 임명함

119) 出站: 사신이나 감사 등을 영접하고 모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그의 숙역 가까운 곳에

사람을 보내는 일

120) 判官: 조선조 때의 지방관직. 순찰사 ․ 유수영(留守營) 및 중요한 주부(州府)의 소재지에서 배속되

어 그 장관을 보좌하는 벼슬로 종 5품으로 임명되었다. 판관은 또 중앙관직에도 있어 각 시(寺) ․

감(監) ․ 원(院) 등에도 배속되었다.

121) 尹暹(1561~1592) : 조선조 선조 때의 문신이며 의인. 자는 여진(汝進), 호는 과재(果齋), 시호는

문렬(文烈), 본관은 남원(南原). 형조랑 ․ 사헌부지평 등을 지내고,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옴.

임진왜란 때는 노모를 모신 친구를 대신하여 상주 싸움에서 박호(朴箎) 이경류(李慶流) 등과 함께

전사하였는데, 이들 3인을 삼종사라고 불렀다.

122) 沙斤察訪: 조선조 때 각도의 역참의 일을 맡아보던 외직. 일명 마관(馬官) ․ 우관(郵官) ․ 역승(驛

丞)이라고 함. 종 6품으로 임명했음

123) 聞慶: 경상북도 서북단에 있는 지명. 그 북쪽에는 남북 교통의 요지인 조령(鳥嶺)이 있음.

124) 忠州: 충청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요지. 임진왜란 때의 대전지(大戰地)인 탄금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