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11. 김성일金誠一의 논죄문제論罪問題

  • 관리자
  • 2021-06-30 오전 9:22:37
  • 2,852
  • 메일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김성일金誠一을 체포하여 하옥下獄시키려 하다가 서울에 이

르기도 전에 도리어 초유사招諭使111)로 삼고, 함안군수咸安郡守류숭인柳崇仁을 경상도

병마사로 삼았다.

이보다 먼저 김성일이 상주尙州에 이르러 왜적이 이미 국경을 침범하였다는 말

을 듣고 밤낮으로 말을 달려 본영本營으로 향하였는데 조대곤曺大坤을 도중에서 만

나서 인절印節112)을 교환하였다.

이때 왜적은 이미 김해金海를 함락시키고 경상우도의 여러 고을을 나누어 노략

질을 하는 것이었다. 김성일이 나아가서 왜적과 만났는데, 부하 장병들이 달아나

려고 하였다. 김성일은 말에서 내려 호상胡床113)에 걸터 앉아서 움직이지 않으며

군관君官이종인李宗仁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용감한 군사이니 적을 보고서 먼저 물러서서는 안된다.”

하였다. 이때 적 한명이 금가면金假面114)을 쓰고서 칼을 휘두르며 돌진하여 왔다.

이를 본 이종인은 말을 달려 뛰어나가서 그를 한 화살로 쏘아 죽이니 여러 적들

이 물러나 도망하고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김성일은 흩어진 군사들을 불러 거두어 모으면서 여러 군현郡縣에 격문檄文115)을

보내어 수습할 계교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런데 임금께서는 김성일이 먼저 일본日本에 사신으로 갔다 와서, “왜적이 쉽사

리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풀어지고 나라 일을 그르쳤다고

해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116)에게 명하여 잡아오게 하여 일이 장차 어떻게 될지 헤

아릴 수 없었다. 경상감사慶尙監司김수金睟는 김성일이 체포를 당하였다는 말을 듣고

나와서 그를 길가에서 송별하였는데, 김성일은 말이나 얼굴빛이 강개慷慨하여 한 마디

말도 자기에 관한 일에 미치는 것이 없고, 오직 김수에게, “힘을 다하여 적을 치라”고

권면하기만 하였다. 이것을 본 늙은 아전[吏] 하자용河自溶은 감탄하며 말하기를,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는 걱정하지 아니하고 오직 나라일만을 근심하니 정말

충신忠臣이다.”

라고 하였다.

김성일이 떠나서 직산稷山에 이르렀을 때 임금께서는 노여움을 푸시고, 또 김성일

이 경상도 사민士民의 인심을 얻은 것을 알고 그의 죄를 용서하고 경상우도초유사慶

尙右道招諭使로 삼아 도내의 백성들을 타일러 군사를 일으켜 적을 치라고 명하였다.

이때 류숭인이 전공戰功이 있으므로 차례를 뛰어넘어 병사兵使로 임명되었다.

 

 

111) 招諭使: 조선조 때 관직으로 난리가 일어났을 때 백성을 불러 모아 타일러 안정시키는 책임을

맡은 임시 벼슬

112) 印節: 조정에서 지방관에서 주어보내는 인장과 병부를 말함

113) 胡床: 의자

114) 金假面: 쇠로 만든 탈

115) 檄文: 급히 여러 사람에게 알리기 위하여 만든 글. 또는 사람들의 감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보내는 글발

116) 義禁府: 조선조 때의 한 관아. 금오(金吾), 왕부(王府)라고도 함.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관장하였다.

관원은 판사(종 1품) 1명, 지사(정 2품) ․ 동지사(종 2품)의 당상관을 합하여 4명을 두어 다른 관원이 겸임하게 하고,

경력(종 4품) ․ 도사(종 5품)를 합하여 10명이고, 그 밖에 나장(羅將) 232명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