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이 함경도咸鏡道로 들어오고, 두 왕자王子가 적의 수중에 잡혔고, 종신從臣김
귀영金貴榮․ 황정욱黃廷彧․ 황혁黃赫과 함경감사 류영립柳永立186)과 북병사北兵使한극함
韓克諴187) 등이 다 왜적에게 잡혔으며, 남병사南兵使이혼李渾은 달아나서 갑산甲山에
이르렀다가 우리 백성들에게 죽은 바 되었고, 남북南北의 군현郡縣들이 다 적에게
함몰되고 말았다.
이때 왜학통사倭學通事함정호咸廷虎라는 사람이 서울에 있다가 적장 가등청정加藤淸
正에게 잡힌 바 되어 인하여 가등청정을 따라 북도北道로 들어갔다. 그는 왜적들이
물러갈 때 도망하여 돌아왔는데 나를 보고 북도의 사정을 자못 자세하게 말하였다.
가등청정은 적장 중에서 더욱 용맹스럽고 싸움을 잘 하는데, 그는 평행장平行長
(소서행장小西行長)과 함께 임진강을 건너 황해도 안성역安城驛에 이르러서 함경도 ․
평안도[兩界]를 나누어 빼앗기를 도모하고 각각 갈 길을 의논하였으나 결정을 짓
지 못하고, 두 적장은 제비를 뽑았는데 소서행장은 평안도로 가게 되고, 가등청정
은 함경도로 가게 되었다.
이에 가등청정은 안성安城백성 두 사람을 사로잡아 길잡이를 시켰다. 두 사람이
“이곳에서 나서 자랐으므로 북도의 길을 알지 못한다.”고 거절하였더니, 가등청정
은 즉시 한 사람을 베어 죽이니, 한 사람은 두려워하여 앞에서 인도하는 길잡이
가 되겠다고 하였다.
왜적은 곡산谷山땅으로부터 노리현老里峴을 넘어서 철령鐵嶺188)의 북쪽으로 나왔다.
그는 하루에 수백리를 가는데 그 기세가 마치 바람이 비를 몰고 가는 것과 같았다.
북도병사北道兵使한극함韓克諴은 6진六鎭189)의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해정창海汀
倉190)에서 만났다. 북도北道의 군사들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하며, 지역이 또한
평탄하고 넓어서 곧 왼쪽 오른쪽으로 달려나와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니, 적들은
능히 지탱하지 못하고 쫓겨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에 날은 이미 저물어서
군사들은 좀 쉬다가 적들이 나오는 것을 기다려 내일 다시 싸우자고 하였으나,
한극함韓克諴은 듣지 않고 그 군사를 지휘하여 적을 포위하였다. 적들은 창고 속에
곡식섬을 내어 벌여놓고 성城을 만들어 시석矢石을 피하면서 그 속에서 조총鳥銃을
쏘았다. 우리 군사는 빗살처럼 가지런히 늘어서서 겹겹이 나무를 묶어 세운 듯이
서 있다가, 총알을 맞으면 꼭 관통이 되고 혹은 총 한방에 3, 4명씩 쓰러져서 우
리 군사는 드디어 무너졌다. 한극함은 군사를 거두어 거느리고 물러서서 고개 위
에 진을 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 싸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밤에 적이 가만히 나와서 우리 군사를 둘러싸고 흩어져 풀숲 속에 매복
하고 있었다. 아침에 안개가 크게 끼었다. 우리 군사는 그래도 적이 산 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한 방의 총소리가 나더니 사방에서 큰 소리로 부르
짖으며 뛰어 나오는데 다 적병들이었다. 우리 군사들이 놀라 드디어 무너져서 장
병들은 적들이 없는 곳을 향하여 도망하다가 모두 진흙구덩이에 빠졌는데 적들이
뒤쫓아 와서 칼로 베어 죽이니, 죽은 사람의 수효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한극함
은 도망하여 종성鐘城191)으로 들어가다가 드디어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두 왕자인 임해군臨海君․ 순화군順和君은 함께 회령부會寧府에 이르렀다. 대개 순화
군은 처음에 강원도江原道에 있었는데, 적병이 강원도로 들이닥친 까닭으로 옮겨
북도北道(함경북도咸鏡北道)로 향한 것이다. 이때 왜적들은 왕자를 끝끝내 쫓아 왔다.
이때 회령부의 아전 국경인鞠景仁은 그 무리를 거느리고 배반하여, 먼저 왕자王子와
종신從臣을 결박하여 가지고 왜적을 맞아들였다. 적장 가등청정은 그 결박을 풀어
준 다음 군중에 머물러 두고 함흥咸興으로 돌아와서 주둔하였다. 이때 홀로 칠계군
漆溪君윤탁렬尹卓烈만은 도중에 병이 났다고 핑계하고는 다른 길로 빠져나와 별해
보別害堡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동지同知이기李墍는 왕자를 따라가지 않고 강원도
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다 적에게 잡히지 않았다. 류영립柳永立은 적에게 구류된 지
며칠 만에 적들은 그가 문관文官이라고 해서 감시를 좀 허술하게 하였는데, 류영립
은 이 틈을 타서 적굴을 빠져나와 도망하여 행재소行在所로 돌아왔다.
186) 柳永立(1537~1599) : 조선조 선조 때 문신. 자는 입지(立之), 본관은 문화(文化). 문과에 급제, 종
성부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함경도관찰사로 있다가 왜적이 북도로 들어와 사로잡혔다가 도망
하였으나, 말썽이 되어 파직됨.
187) 韓克諴(?~1593) : 조선조 선조 때 무신. 경원부사를 거쳐 임진왜란 때는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서
왜적을 해정창에서 싸웠으나, 불리하여 도망했는데 뒤에 말썽이 되어 처형됨.
188) 鐵嶺: 강원도의 회양과 함경남도의 안변 사이에 있는 큰 고개
189) 六鎭: 조선조 세종 때 김종서장군이 여진의 침구에 대비하여 두만강변을 중심으로 설치한 여섯 곳의
대진(大鎭). 곧 종성(鐘城) ․ 은성(隱城) ․ 회령(會寧) ․ 경원(慶源) ․ 경흥(慶興) ․ 부령(富寧)
190) 海汀倉: 함경북도 길주에 있는 지명
191) 鐘城: 함경북도의 두만강 연안에 있는 지명으로 옛 6진의 하나. 군사적 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