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응인韓應寅․ 김명원金命元의 군사가 임진강臨津江에서 무너지고 왜적이 강을 건너
왔다.
이보다 먼저 김명원은 임진강의 북쪽에 있으면서 여러 군사를 나누어 강여울에 벌
여 서서 지키게 하고, 강 가운데 있는 배는 모두 북쪽 언덕으로 끌어다 매어두게 하
였다. 왜적은 진을 임진강의 남쪽에 쳤으나 배가 없으므로 건널 수 없었다. 다만 유
격병遊擊兵들만 내어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싸우면서 버티기 10여일이나 되었어도 왜
적은 끝내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하루는 왜적이 강언덕에 지은 여막廬幕(병사兵舍)을 불태우고 장막을 헐어치우고
군기를 거두어 싣고 물러나 도망가는 모양을 보이며 우리 군사를 유인하는 것이
었다. 신갈申硈은 평소 행동이 가볍고 날카로우나 꾀가 없어서 왜적이 정말로 도망
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강을 건너 뒤쫓아가서 짓밟아 버리려고 하였다. 경기감사京
畿監司권징權徵이 신갈과 합세하였으나 김명원은 능히 금지할 수 없었다.
이날 한응인도 또한 임진강에 이르러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왜적을 추격하려
하였다. 한응인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은 다 강변江邊의 건아健兒들로서 북쪽 오랑
캐와 가까이 있어서 싸우고 진치는 형세를 자세히 알고 있었으므로 한응인에게
알려 말하기를,
“군사들이 먼 곳에서 오느라고 피로한 데다가 아직껏 밥도 먹지 못하였고, 기계
도 정비하지 않았으며, 뒤따라오는 군사도 또한 다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또 왜적
이 물러가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사오니 원컨대 조금 쉬었다가 내일
적군의 형세를 보아서 나가 싸우도록 하십시다.”
하였다. 한응인은 군사들이 머뭇거린다고 하여 몇 사람을 베어 죽였다. 김명원
은 한응인이 새로 조정으로부터 보내왔고 또 자기의 절제를 받지 말라고 명령한
까닭으로, 비록 그것이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감히 충고하지 않았다.
별장別將유극량劉克良은 나이가 많고 군사에 익숙한지라, 힘써 가벼이 진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 것을 말하니, 신갈이 그를 베려고 하여 유극량은 말하기를,
“내가 어려서부터 군사가 되어 싸움에 따라다녔으니 어찌 죽음을 피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나라일을 그르칠까 염려해서입니다.”
하고 분개하면서 나와 그에게 소속된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강을 건너갔다. 우
리 군사가 막 험한 곳으로 들어가려 하니 적이 과연 정병을 산 뒤에 매복시켰다
가 일시에 들고 일어나서 달려들므로, 여러 군대가 무너져 달아났다. 유극량은 말
에서 내려 땅에 앉으면서 말하기를,
“여기 내가 죽을 곳이다.”
하고는 활을 당겨 적 몇 사람을 죽이다가 적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신갈
도 또한 죽었다. 군사들은 달아나서 강언덕까지 왔으나 건널 수가 없어서 바위
위로부터 스스로 몸을 던져 강물에 빠지니 마치 바람에 불려 어지럽게 날리는
나뭇잎과 같았다. 그리고 미쳐 강물에 뛰어들지 못한 사람은 적이 그 뒤로부터
긴 칼을 휘둘러 내려찍으니 모두 엎드려 칼을 받을 뿐 감히 저항하는 사람이 없
었다.
김명원과 한응인 강 북쪽에 있으면서 이것을 바라보고 그만 기운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상산군商山君박충간朴忠侃이 마침 군중에 있다가 말을 타고 먼저 달아
났는데, 여러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김명원으로 여겨 다 부르짖기를,
“도원수(김명원)가 달아났다.”
고 하니, 강여울을 지키던 군사들은 그 소리에 응하여 다 흩어졌다.
김명원과 한응인은 행재소로 돌아왔으나 조정에서는 묻지도 않았다. 경기감사
권징權徵이 가평군加平郡으로 들어가서 난을 피하니 왜적은 드디어 승리한 기세를
타가지고 서쪽으로 달려 내려왔으며, 이를 다시 막아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