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18. 삼도군三道軍이 용인龍仁 싸움에서 무너짐

  • 관리자
  • 2021-07-10 오전 9: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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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순찰사三道巡察使의 군사가 용인龍仁에서 무너졌다.

이보다 먼저 전라순찰사全羅巡察使이광李洸은 전라도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로 들

어와 도우려고 하다가, 임금께서 서도로 피란하시고 서울이 이미 함락되었다는 말

을 듣고는, 군사를 거두어 가지고 전주全州로 돌아왔다. 그런데 도내 사람들은 이

광이 싸우지 아니하고 돌아온 것을 나무라며 분개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니 이광은 마음이 스스로 편안하지 않아서 다시 군사를 징발하여 가지고는

충청도순찰사忠淸道巡察使윤국형尹國馨과 더불어 군사를 합쳐 가지고 나아갔다. 이때

경상도순찰사慶尙道巡察使김수金睟도 역시 그 도道로부터 군관軍官수십명을 거느리고

와서 합세하였는데, 군사들이 모두 5만여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용인龍仁에 이르렀는데, 북두문산北斗門山위에 적의 작은 보루가 있는 것

을 바라보고, 이광李洸은 이것을 쉽게 얕보고는 먼저 용사 백광언白光彦․ 이시례李時

禮등으로 하여금 가서 적을 시험하여 보게 하였다. 백광언 등은 선봉先鋒을 거느

리고 산으로 올라가 적의 보루에서 수십보쯤 되는 곳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활을

쏘았는데, 적들은 나오지 않았다. 날이 저문 뒤에 적들은 백광언 등의 기세가 좀

풀린 것을 보고서 시퍼런 칼을 빼어 들고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돌격해 나오니,

백광언 등은 창황히 서둘러 말을 찾아 타고 달아나려 하였으나 달아나지 못하고

다 적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여러 군사들은 이 말을 듣고 놀라고 두려

워하였다.

이때 세 순찰사는 다 문인文人이라 군사 일에 관하여는 익숙하지 못하고, 군사의

수효는 비록 많았으나 훈련이 통일이 안 되었고, 또한 험한 요지에 군사적 설비

를 하지도 않았으니, 참으로 옛 사람이 말하는 이른바, “군사적인 행동을 봄놀이

하듯 생각하면 어찌 패하지 않겠는가?”

하는 그 말대로 라고 하겠다.

그 다음날에 적은 우리 군사들이 속으로 겁내는 것을 알고는 몇 사람이 칼을

빼어 휘두르고 용맹을 뽐내면서 앞으로 달려 들어왔다. 3도의 군사들이 이것을

바라보고 크게 무너졌는데, 그 소리가 마치 큰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이때

군사물자와 기계를 헤아릴 수 없이 버려두고 도망하여 길이 막혀서 사람들이 다

닐 수가 없었다는데, 적들은 이것을 다 가져다가 불을 질러 버렸다.

이렇게 되자 이광은 전라도로 돌아가고, 윤국형은 공주公州로 돌아가고, 김수는

경상우도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