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30. 이순신李舜臣이 거북선[龜船]으로 왜적을 격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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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8 오전 9: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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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수군절도사全羅水軍節度使이순신李舜臣222)이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원균元均223), 전

라우수사全羅右水使이억기李億祺224) 등과 함께 적병을 거제도巨濟島바다 가운데서 크

게 격파하였다.

이보다 먼저 왜적이 바다를 건너 육지로 올라왔을 때에 원균元均은 왜적의 형세

가 대단한 것을 보고 감히 나가서 치지 못하고, 그 전선戰船백여 척과 화포火砲․

군기軍器를 바닷 속에 침몰시켜 버린 다음, 홀로 수하의 비장裨將이영남李英男225) ․

이운룡李雲龍226) 등과 함께 네 척의 배를 타고 달아나 곤양昆陽의 바다 어귀에 이르

러 육지로 올라가서 왜적을 피하려고 하였다. 이에 그 수군水軍만여명이 다 무너

져 버렸다. 이영남李英男이 간하기를,

“공公은 임금의 명령을 받아 수군절도사가 되었는데, 지금 군사를 버리고 육지로

내려간다면 뒷날 조정에서 죄를 조사할 때 무슨 이유를 들어 스스로 해명하겠습니

까? 그보다는 구원병을 전라도全羅道에 청하여 왜적과 한번 싸워 보고, 이기지 못하겠

으면 그 연후에 도망하여도 늦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니, 원균元均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다고 여겨 이영남으로 하여금 이순신에

게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이에 대하여 “각각 분담한 한계가 있

으니, 조정의 명령이 아니면 어찌 함부로 경계를 넘어갈 수 있으리오?”

하며 거절하였다. 원균은 또 이영남으로 하여금 가서 청하게 하여 무릇 대여섯

차례나 마지않고 왔다가 돌아갔는데, 늘 이영남이 돌아 갈 때마다 원균은 뱃머리

에 앉아서 바라보고 통곡하였다.

얼마 뒤에 이순신은 판옥선板屋船227) 40척을 거느리고 아울러 약속한 이억기와

함께 거제巨濟228)에 이르렀다. 이에 원균과 함께 군사를 합세하여 나아가 왜적의

배와 견내량見乃梁에서 만났다. 이순신은 말하기를,

“이곳은 바다가 좁고 물이 얕아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어려우니 거짓으로 물

러가는 척하고 적을 유인하여, 바다가 넓은 곳으로 나가서 서로 싸우는 것이 좋

겠습니다.”

하니, 원균이 분함을 못 이겨 바로 앞으로 나아가서 싸우려고 덤볐다. 이순신은

말하기를,

“공公은 병법을 모릅니다그려. 그렇게 하다가는 반드시 패하고 맙니다.”

하고는, 드디어 깃발로써 그 배들을 지휘하여 물러나니 왜적들은 크게 기뻐하며

서로 앞을 다투어 따라 나왔다. 배가 벌써 좁은 어귀를 다 벗어나왔을 때 이순신

이 북소리를 한 번 울리니, 모든 배들이 일제히 노를 돌려 저어 바다 가운데 열

지어 벌여 서서 바로 적선과 맞부딪치니 서로의 거리는 수십 보쯤 떨어져 있었

다.

이보다 먼저 이순신은 거북선[龜船]229)을 창조하였다. 이 배는 널판자로 배 위

를 덮어 그 모양이 활처럼 가운데가 높고 주위가 차츰 낮아져서 거북과 같았고,

싸우는 군사들과 노젓는 사람들은 다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활동하고, 왼쪽

오른쪽 앞뒤에는 화포火砲를 많이 싣고 마음대로 이리저리 드나드는 게 마치 베

짜는 북[梭] 드나들 듯하였다.

이순신은 적선을 만나자 대포를 쏘아 이들을 쳐부수며 여러 배들이 일시에 합

세하여 공격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가득하였고, 적선을 불태운 것이 수를 헤

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때 적장은 누선樓船230)을 타고 있었는데, 그 높이가 두어

길이나 되고, 그 위에는 높은 망대가 있어 붉은 비단과 채색 담요로 그 밖을 둘

러쌌었다. 이 배도 또한 우리 대포에 맞아 부서져 버리고 배에 탔던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어 버렸다.

그 뒤에도 왜적들은 싸움마다 연달아 다 패하여 드디어는 도망하여 부산釜山․ 거

제巨濟로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였다.

하루는 이순신이 바야흐로 싸움을 독려하다가 날아오는 총알이 그의 왼쪽 어깨

에 맞아서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렸으나, 이순신은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그는

싸움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칼로써 살을 베고 총알을 꺼내니 두어 치나 깊이 박

혀 보는 사람들은 낯빛이 까맣게 질렸으나, 이순신은 말하고 웃고 하는 것이 태

연하여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첩보[捷]가 알려지자 조정에서 크게 기뻐하여 임금께서는 이순신에게 한 품계 벼슬을

더 높여 주려고 하였으나, 간하는 사람이 너무 지나친 일이라고 하므로 이순신을 정헌正

憲대부로, 이억기와 원균을 가선嘉善대부로 높였다.

이보다 먼저 적장 평행장平行長(소서행장小西行長)은 평양에 이르러 글을 보내 말

하기를,

“일본의 수군 10만여 명이 또 서해西海로부터 올 것입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대왕의 행차는 이로부터 어디로 가시겠습니까?”하였는데, 대체로 적은 본래 수군

과 육군이 합세하여 서쪽으로 내려오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한 번의 싸움에 힘입어 드디어는 그 한 팔이 끊어져 버렸다. 그래서

소서행장은 비록 평양성을 빼앗았다고 하더라도 그 형세가 외로워서 감히 다시는

전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나라에서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아울러 황해도와

평안도 연안 일대도 보전할 수가 있었고, 군량을 조달하고 호령을 전달할 수가

있어서 나라의 중흥中興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동遼東의 금金․ 복復․ 해海․ 개

주[蓋]와 천진天津등지도 적의 침해로 놀람을 당하지 않고, 명나라 군사로 하여금

육로陸路로 와서 도와 왜적을 물리치게 된 것이니, 이는 다 이순신이 한 번 싸움

에 승리한 공이었다. 아아, 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 이순신은 이로 인

하여 삼도三道(경상 ․ 전라 ․ 충청도)의 수군을 거느리고 한산도閑山島231)에 주둔하여

왜적이 서쪽으로 침범하려는 길을 막았다.

 

 

222) 李舜臣(1545~1598) : 조선조 선조 때의 명장(名將).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본관은

덕수(德水).무과에 급제하여 만호(萬戶) ․ 조방장 ․ 정읍현감 ․ 군수 등을 거쳐 전라좌수사가 되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왜적을 크게 무찔러 나라를 구하고, 정유재

란 때 노량해(露梁海)에서 왜적의 퇴로를 막고 섬멸시키다가 전사함.

223) 元均(1540~1597) : 조선조 선조 대의 무장(武將). 자는 평중(平仲), 본관은 원주(原州.) 무과에 급

제하여 만호(萬戶) ․ 부령부사(富寧府使)를 거쳐 임진왜란 때에는 경상우수사로 왜적과 싸우다가

패사(敗死)함.

224) 李億祺(1561~1597) : 조선조 선조 때의 무장. 자는 경수(景受), 시호는 의민(毅愍), 본관은 전주(全

州). 무과에 급제하여 함흥부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에는 전라우수사로 이순신과 함께 왜적을

크게 파하고, 정유재란 때 한산도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함.

225) 李英男(?~1598) : 조선조 선조 때의 무관. 임진왜란 때 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로 원균을 도와 왜

적을 쳤고, 뒤에 이순신을 따라 진도에서 왜적을 쳐 공을 세우고,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露粱海

戰)에서 적을 섬멸시키다가 전사함.

226) 李雲龍(1562~1610) : 조선조 선조 때의 무관. 본관은 재령(載寧). 임진왜란 때 옥포만호(玉浦萬戶)로,

원균이 패전한 뒤 이순신을 도와 왜적을 물리쳐 공을 세우고 그 추천으로 좌수사(左水使)가 됨

227) 板屋船: 널판자로 지붕과 벽을 만든 전선(戰船)

228) 巨濟: 경상남도 동남단 대한해협에 있는 우리나라 제2의 섬

229) 거북선[龜船] :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창조하여 왜적을 격멸시킨 전투용 공격선

230) 樓船: 다락처럼 만든 큰 배

231) 閑山島: 경상남도 통영군의 중부, 거제도의 서남쪽에 있는 섬. 이순신이 왜적을 파하여 크게 승

리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