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24. 임금이 평양성을 떠남

  • 관리자
  • 2021-07-18 오전 9:17:42
  • 2,380
  • 메일

6월 11일에 임금께서 평양성을 떠나 영변寧邊으로 향하셨다. 대신大臣최흥원崔興

源․ 유홍兪泓․ 정철鄭澈등이 호종扈從하고, 좌상 윤두수 ․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순찰사

이원익李元翼은 머물러 평양성을 지켰다. 나도 또한 명나라 장수를 접대하기 위하

여 함께 머물렀다.

이날 적군이 성을 공격하였다. 좌상左相(윤두수尹斗壽) ․ 원수元帥(김명원金命元) ․ 순찰

巡察(이원익李元翼)과 나는 연광정練光亭에 있었고, 본도감사本道監司송언신宋言愼은 대

동성大同城의 문루門樓를 지키고, 병사兵使이윤덕李潤德은 부벽루浮碧樓위쪽의 강여울

을 지키고, 자산군수慈山郡守윤유후尹裕後등은 장경문長慶門을 지켰다. 성안의 군사

와 민부民夫는 합하여 3~4천명인데, 이 인원으로 성첩을 나누어 배치하였으나 부

오部伍가 분명하지 못하고, 성 위에 사람들이 드문드문 혹은 빽빽하며, 혹은 사람

의 위에 사람이 서서 그 어깨와 등이 서로 부딪치고, 혹은 연달아 몇 살받이 터垜

에는 한 사람도 없기도 하였다. 그리고 옷가지를 을밀대乙密臺근처의 소나무 사이

에 걸어놓고 이를 ‘의병疑兵’이라고 말하였다.

대동강 건너 적병을 바라보니 역시 매우 많지는 않았다. 동대원東大院언덕 위에

벌려 한일자처럼 한 줄로 진을 치고 붉고 흰 깃발을 벌여 세웠는데, 마치 우리나

라의 만장挽章모양과 같았다. 왜적은 10명의 기병을 내어 양각도羊角島를 향하여

강물 속으로 들어가니 물이 말의 배에 잠기는데, 그들은 모두 말고삐를 잡고 벌

여 서서 곧 말을 건너 강을 건너오려는 모양을 보였다. 그 나머지 적들도 강 위

를 왕래하는 자들은 혹은 한두 명, 혹은 3~4명씩 짝지어 큰 칼을 메었는데 칼날

이 햇빛이 비추어 번개처럼 번쩍 거렸다. 어떤 사람은 이는 진자 칼이 아니고 나

무로 만든 칼에 백랍을 칠하여 남의 눈을 어찔어찔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멀어서 잘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6~7명의 왜적이 조총鳥銃을 가

지고 강변에 이르러서 평양성을 향하여 총을 쏘니, 그 소리가 매우 크고 탄환이

강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왔고 먼 것은 대동관大同館으로 들어오고 기와 위에 쏟아

졌으며 거의 1천보 거리나 날아왔는데, 혹 성루城樓기둥에 맞은 것은 깊이가 몇

치쯤 틀어박혔다. 그 중에 붉은 옷을 입은 왜적 하나가 연광정練光亭위에 제공諸公

들이 모여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장수인 줄 알고 조총鳥銃을 들고 겨누면서 차츰차

츰 나와 모래벌판까지 이르러 탄환을 쏘아 정자 위에 있는 두 사람을 맞혔으나,

그러나 거리가 먼 까닭으로 중상은 아니었다.

나는 군관軍官강사익姜士益으로 하여금 방패防牌안에서 편전片箭202)을 쏘게 하니,

화살이 모래벌판 위에까지 나가, 적들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물러갔다. 이를 본 원

수元帥김명원은 활 잘 쏘는 사람을 뽑아서 날랜 배를 타고 강의 중류에 나가 왜

적을 쏘며, 배가 점점 동쪽 언덕에 가까워지자 적들도 또한 물러나 피하였다. 우

리 군사는 배 위로부터 현자총玄字銃203)을 쏘고 화전火箭204)이 서까래같이 쭉쭉 뻗

어 강을 지나가 떨어지니, 왜적의 무리들은 이를 쳐다보며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

면서 흩어졌다가 화전이 떨어진 곳으로 다투어 모여 이를 구경하였다.

이날 즉시 병선兵船을 정비하지 않았다고 해서 공방리工房吏한 사람을 베어 죽였다.

이때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강물이 날마다 줄어들므로, 일찍이 재신宰臣을

나누어 보낸 단군檀君․ 기자箕子․ 동명왕묘東明王廟에서 비를 빌었으나, 그래도 비가 오

지 않았다. 나는 윤상尹相(윤두수尹斗壽)에게 일러 말하기를,

“이곳은 강물이 깊고 배도 없으니 왜적들이 능히 건널 수 없겠으나, 오직 강물

의 상류엔 얕은 여울이 많으니 멀지 않아서 왜적들이 반드시 여기로부터 건너오

리라. 건너오게 되면 성을 지킬 수 없으리니, 어찌 엄중히 방비하지 않으리오?”

하니, 김원수金元帥(김명원金命元)는 성품이 느린지라 다만 말하기를,

“이윤덕李潤德에게 명령하여 지키게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이윤덕 같은 사람을 어떻게 의지한단 말이오?”

하고 이순찰李巡察(이원익李元翼)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공公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는 것이 마친 잔치 모임과 같아서 일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없으니, 공이 나가서 강여울을 지켜서는 안 되겠는지요?”

하니, 이원익은 말하기를,

“만약 가보라고 명령하신다면 감히 힘을 다하지 않으오리까?”

하였다. 이에 윤상尹相(윤두수尹斗壽)이 이원익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이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으오.”

하니, 이원익은 일어나서 나갔다.

나는 그때 임금의 명령을 받아 다만 명나라 장수만 접대하고 군사적 일에는 참

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니 반드시 패망할 것만 같아, 빨리 명

나라 장수를 중도에서 맞아서 한 걸음이라도 속히 와서 구원하여 도움이 되게 하

는 것만 같지 못하겠다고 여겼다. 그래서 날이 저물 때 드디어 종사관從事官홍종

록洪宗祿․ 신경진辛慶晋과 더불어 성을 떠나와 밤이 깊어서야 순안順安에 도착하였는

데, 도중에 이양원李陽元의 종사관인 김정목金廷睦이 회양淮陽으로부터 오는 것을 만

나 적병이 철령鐵嶺에 이르렀다는 말을 들었다. 그 다음날 숙천肅川를 지나 안주安州

에 이르렀는데, 요동진무遼東鎭撫임세록林世祿이 또 왔으므로, 그 자문咨文을 접수하

여 행재소로 보냈다.

그 다음날에 임금께서 이미 영변寧邊을 떠나 박천博川에 행차하였다는 말을 듣고,

나는 박천으로 달려갔다. 임금께서는 동헌東軒205)에 나오시어 나를 불러 보시고,

“평양성[平壤]을 지킬 수 있겠더냐?”

고 물으시기에 나는 대답하기를,

“사람들의 마음이 자못 굳건하여 지킬 것 같았습니다. 다만 구원병을 빨리 보내

지 않아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이 일을 위하여 와서 명나라 군사를

맞아 속히 달려가 구원하기를 청하려 하오나, 그러나 지금까지 구원병이 오는 것이

보이지 않으므로 이를 민망하게 생각하고 있나이다.”

하니, 임금께서는 손수 윤두수의 장계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면서, “어제 이미

늙은이와 어린이들로 하여금 성을 나가게 하였다고 하니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

가?” 하시므로 나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실로 성상께서 생각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신이 그곳의 형세를 보면 왜적들은

반드시 얕은 여울로부터 건너왔을 것이오니 마땅히 마름쇠[菱鐵]를 물 속에 늘어

놓고 이를 방비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께서 이 고을에 마름쇠가 있는가 없는가를 묻게 하시므로 곧 알아보아

“수천 개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더니, 임금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급히 사람을 모아 이것을 평양으로 보내라.”

하셨다. 내가 또 아뢰기를,

“평양平壤서쪽의 강서江西․ 용강龍岡․ 증산甑山․ 함종咸從등 여러 고을에는 창고에

곡식도 많고 백성들도 많사온데, 적병이 가까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백성들이 반

드시 놀라서 흩어질 것이오니, 급히 시종侍從한 사람을 여기로부터 보내어 달려가

서 이들을 진무鎭撫하게 하시고, 또 군사를 수습하여 평양을 구원하도록 하는 것이

옳겠나이다.”

하니, 임금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누가 갈 만 한가?”

하시므로, 나는 대답하기를,

“병조정랑兵曹正郞이유징李幼澄이 계략이 있사오니 그를 보낼 만하다고 생각되나이다.”

하고, 또 아뢰기를,

“신은 사세가 급박하와 지체할 수가 없사옵니다. 마땅히 밤새도록 달려가서 명

나라 장수를 맞아 구원군이 올 때를 의논하겠나이다.”

하고, 드디어 하직하고 물러 나와서 이유징을 보고 임금님 앞에서 아뢴 말대로

말하니, 이유징은 깜짝 놀라면서 말하기를,

“그곳은 곧 적의 소굴인데, 어떻게 간다는 말씀입니까?”

하므로, 나는 꾸짖어 말하기를,

“국록을 먹고 있으면 난리를 피하지 않는 것이 신자臣子의 의리이다. 지금 나라

일의 위험하기가 이와 같으니, 비록 끓는 물이나 불 속에 뛰어들라고 하더라도

피해서는 안 되겠는데, 이 한 번 가는 것을 가지고서 어렵게 생각하는가?”

하니, 이유징은 아무 말은 안하면서도 원망하는 기색이 있었다. 나는 임금에게

하직하고 나와서 대정강大定江가에 이르니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울어졌었다. 고개

를 돌려 광통원光通院을 바라보니 들판에 흩어진 군사들이 잇달아 오고 있으므로

평양성이 함락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여 군관 몇 사람을 시켜 달려가서 거두

어 오게 하였더니, 그들은 열아홉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이들은 곧 의주義州․ 용

천龍川등지의 군사로서 평양에 가서 강여울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말하

기를,

“어제 왜적들이 이미 왕성탄王城灘으로부터 강을 건너왔으므로 강가를 지키던 구

사들이 다 무너지고, 병사兵使이윤덕李潤德이 도망하였습니다.”

하였다. 나는 크게 놀라 곧 도중에서 서장書狀을 만들어 군관軍官최윤원崔允元을

파견하여 행재소에 급히 알리게 하였다. 밤에 가산군嘉山郡으로 들어갔다.

이날 밤에 내전內殿206)께서 박천博川에 이르셨다. 이는 대개 북으로 향하시다가

적병이 벌써 북도北道로 들어간 까닭으로 나가시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다. 이때 통

천군수通川郡守정구鄭逑207)가 사자를 파견하여 찬을 올렸다.

 

 

202) 片箭: 짧고 작은 화살로 살촉이 날카로 와서 갑옷이나 투구에 잘 박혔다.

203) 玄字銃: 불화살을 쏘는 대포의 한 가지

204) 火箭: 불을 달아 쏘는 화살

205) 東軒: 고을의 원님이 공사를 다스리던 관청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