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40. 이일李鎰이 순변사巡邊使가 됨

  • 관리자
  • 2021-08-12 오전 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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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李鎰을 순변사巡邊使로 삼고, 이빈李薲을 불러 행재소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일은 이보다 먼저 대동강 여울을 지키다가 평양성이 함락되자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 황해도黃海道로 들어가서 안악安岳으로부터 해주海州에 이르렀다.

그는 또 해주로부터 강원도江原道의 이천伊川에 이르렀다. 그는 세자世子를 모시고

군사 수백명을 모은 다음, 왜적이 평양성으로 들어와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고, 명

나라 구원병이 장차 이른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는 평양으로 돌아와서 진을 임원

역林原驛에 쳤는데, 여기는 평양성 동북쪽 10여 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는 여

기서 의병장義兵將고충경高忠卿등과 함께 세력을 연합하여 왜적을 쳐서 자못 많이

베어 죽였다.

이때 이빈李薲은 순안順安에 있었는데, 늘 군사를 내보내 싸울 때마다 번번이 패

배하니 무군사撫軍司264)의 종관從官들이 다 이일을 이빈과 교체시키려 하였다. 도원

수 김명원金命元은 홀로 이빈을 그대로 맡겨두자고 주장하여 무군사와의 논의가 맞

지 않아 자못 서로 격돌할 기색까지 엿보였다. 조정에서는 나로 하여금 순안順安

군중으로 가서 이를 진정鎭定조집調輯시키라고 하였다. 그런데 나는 당시 조정의

공론이 다 이일이 이빈보다도 낫다고들 말하고, 또 명나라 구원병이 곧 나온다는

말이 들리므로, 그렇다면 이빈이 그 임무를 이겨내지 못 할 것을 염려하게 되므

로, 드디어는 이일을 그에 대신하게 하고, 박명현朴名賢265)이 대신 이일의 군사를

거느리게 하고, 그리고 이빈 행재소로 돌아오게 하였다.

 

 

264) 撫軍司: 임진왜란 때 비변사에 두었던 한 관청

265) 朴名賢(?~?) : 조선조 선조 때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정유재란 때에는 충청도방어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