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38. 박진朴晉이 경주慶州를 수복함

  • 관리자
  • 2021-08-10 오전 1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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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박진朴晉248)이 경주慶州를 수복하였다.

박진은 처음에 밀양密陽으로부터 달아나서 산속으로 들어갔었는데, 조정에서는

전병사前兵使이각李珏이 성을 버리고 도망하였다고 해서 즉시 그가 있는 곳에서 베

어 죽이고, 박진을 그 대신 병사로 삼았다.

이때 왜적의 군사들이 가득 차 득실거려 행조行朝(행좌소行左所) 소식이 남쪽지방

에 통하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되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는데, 박진이 병사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이에 흩어졌던 백성들이 차

츰차츰 모여들고 수령守令들도 왕왕 산골짜기로부터 다시 나와서 일을 보게 되니,

비로소 조정朝廷이 일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권응수權應銖가 영천永川을 수복하게 됨에 이르러, 박진은 경상도의 군사 만여명

을 거느리고 나아가 경주성의 성 밑에 육박하였다. 이때 왜적들은 몰래 북문을

나와서 우리 군사의 뒤를 엄습하므로, 박진은 군사를 거느리고 달아나 안강安康으

로 돌아왔다. 그는 밤에 또 군사를 몰래 경주성 밑에 매복시켜 놓았다가 비격진

천뢰飛擊震天雷249)를 쏘아 성안으로 들여보내니, 왜적들이 있는 객사의 뜰안에 떨어

졌다. 그런데 왜적들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지 못하여 다투어 모여들

어 이것을 구경하고, 서로 밀고 굴려보기도 하여 이를 살펴보았는데 갑자기 포砲

가 그 가운데로부터 폭발하여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고 쇳조각이 별처럼 부서져

서 흩어지니, 이를 맞고 즉시 쓰러져 죽은 사람이 30여 명이나 되었고, 맞지 않은

사람도 역시 쓰러졌다가 오래 되어서야 일어나니,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모두 다 신통한 재주

를 부린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왜적들은 그 다음날 드디어 모든 무리를 이끌고

경주성을 버리고 도망하여 서생포西生浦로 가버렸다.

박진은 드디어 경주성으로 들어가서 남아 있는 곡식 만여 석石을 얻었다. 이 사

실이 임금에게 알려지자 박진을 가선대부로 승진시키고, 권응수를 통정대부로 승

진시키고, 정대임鄭大任을 예천군수醴泉郡守로 승진시켰다.

진천뢰震天雷를 날려 공격한 일은 옛날에는 그 전법이 없었는데, 군기시軍器寺의

화포장火砲匠이장손李長孫250)이란 사람이 있어 이 무기를 창안하여 만들어 낸 것이

다. 이 무기는 진천뢰震天雷를 가져다가 대완구大碗口251)에 넣어 쏘면 능히 5~6백

보步를 날아가서 땅에 떨어져 한참 있으면 불이 그 안으로부터 일어나 터지는 것

이 있는데, 왜적들은 이 물건(무기)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248) 朴晉: 조선조 선조 때 무신. 자는 명보(明甫), 시호는 의열(毅烈). 무과에 급제하여 밀양부사로

있다가 임진왜란 때에는 좌병사가 되어 경주를 수복하는데 공을 세움. 벼슬이 참판에 이름

249) 飛擊震天雷: 임진왜란 때 화포장 이장손이 만든 무기로 화약․ 철편․ 뇌관 등을 속에 넣고 겉을 쇠로 싸서

만든 폭발탄이다. 박진이 이 무기로 왜적을 쳐 경주성을 수복하였다.

250) 李長孫: 조선조 선조 때 비격진천뢰를 발명한 사람

251) 大碗口: 우리나라 조선조 때의 대포. 다른 이름으로 댕구라고 함. 본래는 돌을 이 속에 넣고 화

약을 터뜨려 쏘았으나, 임진왜란 때 이장손이 발명한 지천뢰를 여기 넣고 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