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61. 이순신李舜臣의 인품人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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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8 오전 11: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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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李舜臣의 자字는 여해汝諧이고, 그의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그의 선조에 이변邊이라는 이는 벼슬이 판부사判府事에 이르렀는데 강직한 것으

로 이름이 높았으며, 증조曾祖인 이거灌据는 성종成宗79)을 섬겼는데, 연산燕山80)이 동

궁東宮으로 있을 때 그는 강관講官이 되어 엄격하므로 그 꺼림을 당하였다. 그는 일

찍이 장령掌令81)이 되었을 때에 탄핵彈劾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으니 만조백관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호랑이 장령[虎掌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할아버지인 이백록[百

祿]은 가문의 덕으로 벼슬을 하였고, 아버지인 이정[貞]은 벼슬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어렸을 때 영특하고 활달하였다. 그는 여러 아이들과 함께 놀 때에도

나무를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가지고 거리에서 놀았는데, 그 마음을 거스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의 눈을 쏘려고 하였으므로 어른들도 혹은 그를 꺼려 감히 그

군문 앞을 함부로 지나가지 못하였다.

이순신은 자라서는 활을 잘 쏘았으므로 무과武科82)를 거쳐서 출세하였다. 이씨의

조상은 대대로 유교를 숭상하여 문관을 지냈는데, 이순신에 이르러서 비로소 무과武

科에 올라서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練院奉事83)에 보직되었다.

병조판서兵曹判書김귀영金貴榮은 자기의 딸이 있었는데, 그를 이순신의 첩으로 만

들려 하였으나 이순신은 승낙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이순신

은 말하기를,

“내가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왔는데, 어찌 감히 권세가 있는 집안에 의탁하여 승

진할 것을 도모하겠는가?”

하였다. 병조정랑兵曹正郞서익徐益이 자기와 친한 사람이 훈련원訓練院에 있었는데,

그 차례를 뛰어 넘어 추천하여 보고하려고 하였다. 이순신은 훈련원장무관[掌務官]

으로서 그 불가함을 고집하니, 서익은 이순신을 패초牌招84)하여 뜰 아래 세워놓고

이를 힐책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말씨와 낯빛을 조금도 변하지 않고 바르게 설

명하여 굽히지 않으니, 서익은 크게 노하여 기승을 부리며 임하였으나, 이순신은

조용히 응수하여 끝내 굽히지 않았다. 서익은 본래 오기가 많아 남을 업신여기므

로 비록 동료들이라 하더라도 역시 그를 꺼렸으므로 그와 말다툼하기를 꺼리는

터였는데, 이날 하리下吏들이 섬돌 아래 있다가 모두 서로 돌아보고 혀를 내두르면

서 말하기를,

“이관원(이순신)이 감히 본조(병조)정랑과 항쟁을 하니 그는 유달리 앞길을 생각

지 않는 것인가?”

하였다. 날이 저물어서야 서익은 열적게 굽혀지면서 돌아가게 하였다. 식자識者

들은 이 일로 해서 차츰 이순신을 알게 되었다.

이순신이 막 옥에 갇혔을 때는 일이 어떻게 될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한 옥리

獄吏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85)에게 비밀히 말하기를,

“뇌물을 쓰며 죄를 면할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이순신이 이 말을 듣고 이분에게 노하여 말하기를,

“죽으면 죽을 따름이지 어찌 바른 도리를 어기고 삶을 구하겠느냐?”하였다. 그가

지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이와 같았다.

이순신은 사람됨이 말과 웃음이 적었고, 용모는 단아하여 마음을 닦고 몸가짐을

삼가는 선비와 같았으나, 속에 담력과 용기가 있어서 자신의 한 몸을 돌보지 아

니하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으니, 이는 곧 그가 평소에 이러한 바탕을 축

적한 때문이었다.

그의 형님 이희신[羲臣]과 이요신[堯臣]은 다 먼저 죽었으므로 이순신은 그들이

남겨 놓은 자녀들을 자기의 아들딸처럼 어루만져 길렀으며, 무릇 시집보내고 장가

들이는 일은 반드시 조카들을 먼저 한 뒤에야 자기 아들딸을 보냈다.

이순신은 재수는 있었으나 운수가 없어서, 백 가지의 경론 가운데서 한 가지도

뜻대로 베풀지 못하고 죽었다. 아아, 애석하다.

 

 

79) 成宗: 조선조 제 9대 임금

80) 燕山: 조선조 제10대 임금, 곧 연산군

81) 掌令: 조선조 때 사헌부에 속한 관직으로 종4품 벼슬. 정원 2명

82) 武科: 옛날 나라에서 관리를 선발하는 과거. 곧 국가고시로, 무과는 조선조 제3대 태종 8년(1408)

에 설치하여 처음에는 용호방(龍虎榜)이라 이름 했음

83) 權知訓練院奉事: 훈련원은 조선조 때 관청으로, 군사의 시재(詩才) ․ 무예의 연습 ․ 병서와 전진(戰

陣)의 강습 등을 맡아보던 곳. 봉사(奉事)는 여기에 속한 종8품 벼슬

84) 牌招: 신분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서신을 보내 부르는 것

85) 李芬: 이순신의 조카로 통제사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그 명령에 따라 발상(發喪)하지 않고, 그

임을 대행하여 왜적을 격퇴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