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암 이현일 선생시
징비록(懲毖錄)을 읽고 감회를 읊다. 기축년(1649, 인조27)
선조대왕 일찍이 서쪽으로 몽진하실 때 / 宣王昔遭西狩憂
한 모퉁이 용만에서 왕업이 어려웠었네 / 一隅龍灣王業艱
임금이 총명한 어진 신하들의 보필에 힘입어 / 主賴聰明輔由哲
한 번의 지휘로 위태로운 나라를 안전하게 만들었네 / 轉危措安指揮間
위로 천심을 감동시켜 천자가 눈살을 찌푸렸고 / 上格天心彩眉顰
아래로 피눈물로 얼룩진 백성들을 위로하였네 / 下慰黎元血淚斑
천병은 평양성에서 승리하고 / 天兵奏凱平壤城
우리 군사는 남해에서 무위를 떨쳤네 / 我師揚武南海灣
요사한 기운 모두 걷어내고 옛 도읍 회복하니 / 妖氛豁盡舊都復
죄를 꾸짖고 공을 치하하며 거가가 돌아왔네 / 策罪課功車駕還
천도는 무상(無常)하여 치란이 갈마드니 / 天道難常治亂迭
나라가 안정되자 임금은 세상을 떠나셨네 / 鼎湖龍騰鳳去霄
사십 년 뒤에 다시 병란이 일어 / 四十年來復瘡痍
남한산성의 깊은 수치는 씻을 수 없네 / 南漢深羞磨不銷
저들의 위세에 겁을 먹어 온 나라가 어지러우니 / 怯威趨風擧國迷
북쪽으로 가는 사신 빈번할 뿐 명나라는 아득하기만 하네 / 北使徒頻天路遙
조당의 관원들 더 이상 중국의 법도가 없고 / 朝堂無復漢官儀
도성에는 오랑캐 말만 시끄럽게 들리네 / 城闕徒聞胡語喧
뭇 관료들 경국의 계책을 진달하는 자 없고 / 千官莫陳經國謨
지존은 군려가 번거로운 것을 깊이 꺼리시네 / 至尊深憚軍旅煩
오직 북쪽 오랑캐의 활과 말이 강한 줄만 아니 / 唯知北虜弓馬勁
어찌 우리에게 빼어난 산천이 있음을 생각하리 / 豈料在我山川奇
일단의 군대로 깊이 쳐들어가 오랑캐 소굴을 뒤엎지 못할지라도 / 縱不懸兵覆豺穴
우리나라의 형세를 이용하더라도 해 볼 만한 것이네 / 據國形便猶足爲
더구나 지금 호병은 세 변방을 대적하느라 / 況今胡兵敵三陲
군대는 쇠잔하고 자주 지쳐 있으니 / 師老爲殘數爲疲
전쟁이란 상대가 지친 틈을 이용함은 옛 책에 있는 말이니 / 兵乘勞悴古之經
요동을 제압하기는 지금이 좋은 때이네 / 控制遼壃誠得時
산동에 격문을 보내면 누가 떨쳐 일어나지 않겠으며 / 投檄山東孰不奮
제도(諸道)에 군대를 징발하면 누가 감히 지체하겠는가 / 徵發諸州誰敢遲
삼한의 재력이 적다고 말하지 말라 / 休道三韓財力綿
조그마한 고구려도 일찍이 수나라를 대적했느니 / 一片丸都曾敵隋
몸은 초야에 묻혀 있고 구중궁궐은 깊으니 / 身潛草野九重深
어리석은 충정 베풀 곳 없음이 한스럽네 / 獨恨愚衷無所施
빈말은 보탬이 없고 허물만 초래하니 / 空言無補只招尤
진편을 덮어 놓고 두 줄기 눈물만 흘리네 / 掩著陳篇雙涕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