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68. 진주성 포루晉州城砲樓의 역사役事 문제

  • 관리자
  • 2021-10-08 오전 9: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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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주安州에 있을 때 우인友人김사순金士純103)이 경상우감사慶尙右監司가 되었

는데 서신을 보내 이르기를, “진주성晉州城을 잘 수리하여 죽기를 기하고 지킬 계

교를 마련하려고 합니다.”하였다.

이보다 먼저 왜적은 일찍이 한 번 진주성晉州城을 침범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패하여 물러갔었다. 나는 김사순에게 답서를 보내 이르기를,

“왜적은 조만간에 반드시 많은 군사를 사용할 것이니, 성을 지키는 일이 옛날과

비교하여 좀 어려울 것입니다. 마땅히 포루砲樓를 세워 이에 대비하여야만 가히 근

심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드디어는 서신 속에 그 제도를 상세하게 말하였다.

계사년(1593) 6월에 나는 왜적이 다시 진주성을 공격한다는 말을 듣고 종사관從

事官신경진辛慶晉에게 일러 말하기를,

“진주의 일이 매우 위태로운데 다행이 포루砲樓가 있으면 그래도 지탱할 수 있

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였다. 얼마 있다가 합천陜川으로 내려갔다가 진주성이 벌써 함락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단성현감丹城縣監조종도군趙宗道君또한 김사순의 벗인데 나에게 말하기를,

“지난해에 김사순과 함께 진주성에 머물러 있을 때 김사순이 내 서신을 보고

좋아 날뛰면서 기이한 계교라고 칭찬하며서 즉시 그 막하에 있는 벗 몇 사람과

성城을 돌아보고, 그 형세에 따라 꼭 여러 곳에 포루를 설치할 것을 생각하고는,

나무를 베어 강물에 띄워 내려 보내게 하였더니, 고을 백성들이 그 역사를 꺼리

며 말하기를, “전에는 포루砲樓가 없어도 오히려 성을 지키고 왜적을 물리쳤는데,

지금은 애써 사람을 수고롭게 들볶습니까?” 하였으나, 김사순은 듣지 않고 포루를

만들 재목을 이미 갖추고 역사를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는데, 마침 김사순이 병

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은 드디어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하므로 서로 함께 이것을 아주 애석하게 여기면서 헤어졌다.

아아! 김사순의 불행함은 곧 한 성(진주성) 천만 사람의 불행이었다. 이것은 진

실로 운수이지 사람의 힘으로는 능히 용납될 것이 아니었다.

 

 

103) 金士純: 김성일(金誠一)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