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66. 지세 이용이 승패를 좌우함

  • 관리자
  • 2021-10-05 오전 1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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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조조鼂錯100)가 병사兵事에 관하여 진언하기를,

“군사를 거느리고 싸움터에 임하여 적과 싸우는 데 중요한 일이 세 가지가 있

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지형地形(지세地勢)을 잘 이용하는 것이요, 둘째로는 군사들

이 명령을 잘 복종하고 익히는 것이요, 셋째로는 무기는 좋은 것과 예리한 것을

쓰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전쟁을 하는 데 가장 요긴한 것이고 승부가 결정되

는 것이라, 장수된 사람은 알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왜놈들은 공격하는 싸움에도 익숙하고 무기도 아주 예리하였으며, 옛

날에는 조총鳥銃이 없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있어서 그 멀리 가는 위력과 명중시키

는 재주가 화살보다도 몇 갑절이나 되었다.

우리가 만약 평원의 넓은 들판에서 서로 만나 둘이 맞대어 진을 치고 병법에

따라 교전하였다면 그를 대적하기가 아주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대개 화살의 위

력은 백 보步를 넘지 못하지만 조총의 능력은 능히 수백 보에 이르고 그것도 폭

풍과 우박처럼 쏟아지니, 그것을 당해 낼 수 없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러나 적보다 먼저 지형을 잘 가려서 그 산의 험하고 숲이 빽빽이 우거진 곳

을 자리잡아 가지고 활 잘 쏘는 군사를 풀어 매복시켜 적으로 하여금 그 형체를

보지 못하게 하고는 좌우에서 함께 활을 쏘게 한다면, 저들이 비록 조총鳥銃과 창

칼이 있다 하더라도 다 쓸 수가 없게 되어 가히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 한 가지 일을 들어 증명을 한다면, 임진년(1592)에 왜적이 서울에 들어

와서 날마다 성 밖에 흩어져 노략질을 하여 원릉園陵101)도 역시 보전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고양高揚사람 진사進仕이노李櫓는 활을 좀 쏠 줄 알고 담력도

있었다. 하루는 동료 두 사람과 각각 활과 화살을 가지고 창릉 ․ 경릉[昌․ 敬陵]으로

들어갔는데, 뜻밖에 왜적의 무리들이 크게 나와 산골짜기에 가득 찼다. 이노 등은

어찌할 계교가 없어서 등나무 ․ 칡덩굴이 빽빽이 우거진 숲속으로 달려 들어갔더

니, 왜적들이 쫓아와서 찾느라고 돌아다니며 기웃거리므로, 이노 등은 그 속에서

문득 활을 쏘니 왜적들은 화살을 맞고 거꾸러졌다. 그들은 또 그 장소를 옮겨 왔

다 갔다하며 여기 번뜩 저기 번뜩 하니 왜적들은 더욱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로부터 왜적들은 이르는 곳마다 우거진 숲만 보면 멀리멀리 도망하여 피하

며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여 두 능[昌․ 敬陵]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면 지세를 잘 이용하고 못 이용하는데 따라 성공과 실패가 따

르게 된다고 하겠다. 그 당시 왜적이 상주尙州에 있을 때 신립申砬․ 이일李鎰등이 만

약 이런 계교를 쓸 줄 알아서 먼저 토천兎遷과 조령鳥嶺의 수 삼십리 사이에 활 잘

쏘는 사람 수천명을 매복시키고 왜적으로 하여금 군사의 수가 많고 적은 것을 헤

아릴 수 없게 만들어 놓았더라면 가히 적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인데, 오합지졸烏

合之卒102), 곧 훈련하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그 험한 요새를 버리고는 평탄한 곳

에서 서로 승부를 다투었으니, 그렇게 패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으리라. 나는 전쟁

의 기밀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면서 지금 또 이를 특별히 기록하는 것은 뒷날의

경계를 삼으려는 까닭이다.

 

 

100) 鼂錯: 한(漢)나라 문제(文帝) ․ 경제(景帝) 때의 정치가. 벼슬은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지냄

101) 園陵: 능묘(陵墓). 능격의 무덤과 원격의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