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58. 왜적이 남쪽으로 물러감

  • 관리자
  • 2021-09-19 오전 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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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물러갔다.

이때 왜적들은 3도三道를 짓밟았는데, 지나는 곳마다 가옥을 다 불사르고 백성들

을 죽였으며, 무릇 우리나라 사람을 잡기만 하면 모두 그 코를 베어 가지고 위엄

을 보였으므로, 왜적들이 직산稷山에 이르자 서울[都城] 사람들은 벌써 다 달아나

흩어지는 형편이었다.

9월 9일 내전內殿(왕비王妃)께서는 병란을 피하여 서쪽지방으로 내려가셨다.

명나라 장수인 경리經理양호楊鎬와 제독提督마귀麻貴는 서울에 있으면서 평안도平

安道군사 5천여 명과 황해도 ․ 경기도 군사 수천명을 징집하여 강여울을 나누어 지

키고 창고를 경비하여 지켰다.

왜적은 경기도京畿道지경까지 왔다가 도로 물러갔는데, 가등청정은 다시 울산蔚

山에 주둔하고, 소서행장은 순천順天에 주둔하고, 심안돈오沈安頓吾(조진의홍鳥津義弘)

는 사천泗川에 주둔하였는데, 그 머리와 끝의 거리가 7~9백리나 되었다.

이때 서울은 거의 지키지 못할 상태에 놓였는데, 조신朝臣들은 서로 다투어 피란

할 계책을 올렸다. 지사知事신잡申磼은 진언하기를,

“임금께서는 마땅히 영변寧邊으로 떠나소서. 신은 일찍이 병사兵使가 되었으므로

영변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곧장醬이

없는 것이오니, 만약 미리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어찌 소용되는 것을 이어 댈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 이 말을 전하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신일辛日에는 장을 담그지 않는다네.”

라고 하였다. 한 대신이 조정에서 간하기를,

“이번의 왜적은 어찌 걱정할 거리가 되겠습니까? 오래 끌면 반드시 저절로 물러

가게 될 것이오니, 마땅히 임금님의 행차를 받들고 편안하신 곳에 모셨으면 할

따름입니다.”

했다. 그런데 도원수 권율權慄이 달아나 서울에 이르렀으므로, 임금께서는 불러

보시고 그에게 정세를 물으니, 권율은 대답하기를,

“당초에 임금님께서 갑자기 서울로 돌아오신 것이 적합한 처사가 아니었습니다.

마땅히 서쪽 지방에 머물러 계시면서 왜적의 형세가 어떠한가를 살펴보셔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조금 뒤에 왜적이 물러갔다는 말이 들리자 권율權慄은 또 경상도慶尙道로

내려갔는데, 대간臺諫들은 “권율은 꾀가 없고 겁이 많으니 도원수都元帥로 삼아서는

안되겠습니다.”라고 논핵하였으나, 임금께서는 듣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