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54. 황석산성黃石山城의 싸움

  • 관리자
  • 2021-09-12 오후 5: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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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의 군사가 황석산성黃石山城을 함락시켰는데, 안음현감安陰縣監곽준郭䞭65)과 전

함안군수咸安郡守조종도趙宗道65)가 전사하였다.

이보다 먼저 체찰사體察使이원익李元翼․ 도원수[元帥] 권율權慄이 도내道內의 산성山

城을 수리하여 왜적을 막을 것을 의논하고, 공산公山․ 금오金烏․ 용기龍紀․ 부산釜山등

의 산성山城을 쌓았는데, 공산산성과 금산산성에는 백성들의 힘이 더욱 많이 들었

다. 그리고 이웃 고을의 기계와 양곡을 모두 거두어 그 속에 채워 두고, 그 수령

守令들을 독려하여 늙은이 어린이와 남자 부녀자들을 다 거느리고 산성으로 들어

가 지키게 하니, 먼 곳 가까운 곳 할 것 없이 다 소란하였다.

왜적이 다시 출동하게 되자, 가등청정은 서생포西生捕로부터 서쪽인 전라도全羅道

로 향하여, 장차 소서행장이 거느리고 수로水路로 오는 군사와 함께 모여 남원南原

을 치려하였다. 이때 도원수都元帥(권율權慄) 이하 모든 장병은 다 그 위풍만 바라보

고 피하여 물러가고, 각처의 산성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전령傳令하여 각각 흩어져

가서 적병을 피하게 하였다. 오직 의병장義兵將곽재우郭再祐만이 창녕昌寧의 화왕산

성火王山城으로 들어가서 죽기를 기하고 지키니, 왜적들은 산성의 밑에 이르러 산성

의 형세가 험준하고, 그리고 성 안 사람들이 고요히 움직이지 아니하고 지키는

것을 쳐다보고는 공격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가버렸다.

안음현감安陰縣監곽준郭䞭황석산성黃石山城으로 들어가니 전 김해부사金海府使백사

림白士霖도 또한 성 안으로 들어왔다. 백사림은 무인武人이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든든하게 생각하였는데, 왜적의 군사들이 성을 공격한 지

하루만에 백사림이 먼저 도망하여 가자 모든 군사들이 다 무너지고 말았다. 왜적

이 성 안으로 몰려 들어오자, 곽준은 그 아들 이상履祥에게 시집갔는데, 유문호는

왜적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곽씨郭氏는 이미 성 밖으로 나와 있었으나 이 말을

듣고 그 몸종에게 일러 말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내가 죽지 않은 것은 남편이 살아 있었기 때문인데, 이

제 남편까지 잡혔다고 하니 내 어찌 살아 있겠는가?”

하고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조종도趙宗道는 일찍이 말하기를,

“나도 일찍이 대부大夫의 뒤를 따르던(벼슬하던) 사람인데, 도망하여 숨는 무리

들과 함께 어울려 풀숲에서 헤매다가 죽을 수는 없다. 죽는다면 마땅히 떳떳하게

(대장부의 죽음답게)죽을 것이다.”

하였다. 그는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성 안으로 들어왔었는데, 시詩를 지어 읊기를,

“공동산崆峒山66) 밖이라면 삶이 오히려 기쁘겠고[崆峒山外生猶喜] 순원성巡遠城67)

안이라면 죽음 역시 영광일세[巡遠城中死亦榮].”

라고 하였다. 그는 드디어 곽준과 함께 왜적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65) 郭䞭(1550~1597) : 조선조 선조 때의 문신.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 시호는 충렬(忠烈),

본관은 현풍(玄風). 임진왜란 때 의병에 가담하여 공을 세우고, 정유재란 때 안음현감으로 황석산

성을 지키다가 절사(節死)함

65) 趙宗道(1537~1597) : 조선조 선조 때 무신.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본관은 함안(咸

安). 정유재란 때 함안군수로 황석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절사함

66) 崆峒山: 중국의 서방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명. 옛날 중국의 황제가 여기 왔다 갔다는 고사를

따라 선조께서 서방 평안도로 피란한 것을 뜻함

67) 巡遠城: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안록산(安祿山)이 난을 일으키자 장순(張巡)은 허원(許遠)과 함께

수양성을 지키다가 절사함. 그러므로 순원성은 장순과 허원이 사수한 수양성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