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의 군사들이 전라도全羅道를 침범하자, 김제군수金堤郡守정담鄭湛234)과 해남현
감海南縣監변응정邊應井235)이 힘을 다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때 왜적은 경상우도慶尙右道로부터 전주全州지경으로 들어오므로, 정담 ․ 변응정
등이 이를 웅령熊嶺236)에서 막았는데, 목책木柵을 만들어 산길을 가로질러 끊어놓고
서 장병들을 독려하여 종일토록 크게 싸워 적병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쏘아 죽
였다. 왜적들이 물러가려 할 무렵에 마침 날이 저물고 화살이 다 떨어졌는데, 왜
적들이 다시 나와 치므로 두 사람은 이를 막다가 함께 전사하고, 드디어는 군사
들이 무너졌다.
그 다음날 왜적이 전주全州에 이르니 관리들이 달아나려고 하였는데, 고을 사람
으로 전에 전적典籍벼슬을 지낸 이정란李廷鸞237)이 성안으로 들어가서 아전과 백성
들을 일으켜 굳게 지켰다.
이때 왜적의 정예부대가 웅령熊嶺에서 많이 죽었으므로 그 기세가 이미 흩어져
버렸고, 전라감사 이광李洸이 또 의병疑兵을 성밖에 베풀고 낮에는 깃발을 많이 벌
여 세우고 밤이면 횃불을 온 산에 가득히 벌여놓으니, 왜적은 성 밑에 와서 몇
번 돌아다니며 살피다가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달아나 버렸다.
왜적은 돌아가다가 웅령熊嶺에 이르러 전사한 사람의 시체를 모두 모아 길가에
묻어 몇 개의 큰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나무를 그 무덤 위에 세우고 쓰
기를 ‘조선국朝鮮國의 충간의담忠肝義膽을 조상[吊]한다.’고 하였다. 이는 대개 그들[鄭
湛․ 邊應井] 등이 힘써 싸운 것을 칭찬한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전라도全羅道한 도道만은 유독 보전되었다.
234) 鄭湛(1548~1592) : 조선조 선조 때의 의병장. 자는 언결(彦潔), 본관은 야성(野城). 무과에 급제하
여 임진왜란 때 김제군수로 의병을 모아 거느리고 웅령에서 왜적을 쳐부수다가 전사함
235) 邊應井(1557~1592) : 조선조 선조 때의 무관. 자는 문숙(文淑), 시호는 충장(忠壯), 본관은 원주(原
州).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해남현감으로 정담과 함께 웅령에서 왜적을 쳐부수다가
전사함
236) 熊嶺: 전라도 전주와 금산 사이에 있는 고개, 웅치(熊峙)
237) 李廷鸞(1529~1600) : 조선조 선조 때 무관. 자는 문부(文父), 본관은 전의(全義). 무과에 급제하여,
해남현감 ․ 도사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전주에서 의병을 모아 전주를 지키는 데 공을 세워 태상
첨정(太常僉正)이 되고, 공주목사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