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37. 권응수權應銖 등이 영천永川을 수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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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8 오전 9: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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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부봉사訓練副奉事권응수權應銖245)와 정대임鄭大任246)등이 향병鄕兵247)을 거느리

영천永川에 있던 왜적을 쳐서 이를 파하고 드디어 영천을 수복하였다.

권응수는 영천 사람인데 담력과 용맹이 있었다.

그는 정대임과 함께 향병鄕兵천여명을 거느리고 왜적을 영천성에서 포위하였는데,

군사들이 왜적을 두려워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권응수는 그 몇 사람을 베니, 군사들이 다투어 기운을 뽐내며 성을 넘어 들어

가서 왜적과 좁은 골목에서 싸워 쳐부수니 왜적들은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하여

창고 속으로 들어가고, 혹은 명원루明遠樓위로 올라갔다. 우리 군사는 불로써 이

를 공격하여 모두 태워 죽였는데, 그 시체 타는 냄새가 몇 리 까지 풍겼다.

그 살아남은 왜적 수십 명은 도망하여 경주慶州로 돌아가 버렸다.

이로부터 신녕新寧․ 의흥義興․ 의성義城․ 안동安東등지의 왜적들도 다 한쪽 길로 모

이게 되었다. 그리고 경상좌도의 여러 고을이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천永川

에서 한 번 싸워 이긴 공이었다.

 

 

245) 權應銖(1592~1608) : 조선 선조 때의 무장. 자는 중평(中平). 호는 백운재(白雲齋), 시호는 충의(忠

義), 본관은 안동(安東).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영천을 수복하고는 의

병대장으로 활약하였음. 뒤에 경상병마사 ․ 밀양부사 ․ 오위도총관 등을 지냄

246) 鄭大任(1553~1594) : 조선조 선조 때의 무장.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 본관은 연일(延

日).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銖)와 의병을 거느리고 영천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움, 뒤에 무과에

급제하고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함

247) 鄕兵: 시골 사람들로 편성된 군대. 여기서는 의병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