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48. 서울이 수복收復됨

  • 관리자
  • 2021-09-01 오전 9: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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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에 서울이 수복收復되었다. 명나라 군사가 도성[城]으로 들어오고 이제

독李提督(이여송李如松)이 소공주댁小公主宅(뒤에 남별궁南別宮이라고 칭하였다)에 객관

을 정하였다. 이보다 하루 전에 왜적은 벌써 도성을 빠져나갔다.

나도 명나라 군사를 따라 도성으로 들어왔는데, 성 안에 남아 있는 백성들을

보니 백 명에 한 명 꼴로 살아남아 있지 않았고, 그 살아 있는 사람도 다 굶주리

고 야위어 병들고 피곤하여 낯빛이 귀신과 같았다. 이때는 날씨가 몹시 무더웠는

데, 죽은 사람과 죽은 말이 곳곳에 드러난 채 있어서, 썩는 냄새가 성 안에 가득

차서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 코를 막고서야 지나갈 형편이었다.

관청[公]과 사사[私]집 할 것 없이 하나도 없이 다 없어져 버리고, 오직 숭례문崇

禮門27)으로부터 동쪽에선 남산南山밑 일대에 왜적들이 거처하던 곳에만 조금 남아

있었다. 종묘宗廟와 세 대궐 및 종루鐘樓․ 각사各司․ 관학館學등 큰 거리 이북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다 타서 없어지고 오직 재만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소공주댁小公主宅

은 역시 왜적의 장수 수가秀嘉가 머물러 있던 곳이었으므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나는 먼저 종묘를 찾아가서 통곡하였다. 다음으로 제독(이여송)이 거처하는 곳

에 이르러, 문안하려고 온 여러 사람들을 보고 한참 동안이나 소리치며 통곡하였

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제독(이여송)을 찾아가서 안부를 묻고 또 말하기를,

“왜적들의 군사가 겨우 물러갔으나, 여기서 떠나갔다 해도 반드시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원컨대 군사를 일으켜 급히 추격하도록 합시다.”

라고 말하니, 제독(이여송)은 말하기를,

“나도 실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급히 추격하지 않는 까닭은

한강漢江에 배가 없는 때문일 따름입니다.”

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만약 노야老爺28)가 왜적을 추격하려고 한다면 내가 먼저 한강 방면으로 나가서

배를 징발하겠습니다.”

하니, 제독(이여송)은,

“그러면 아주 좋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나는 곧 한강으로 달려 나갔다. 이보다 먼저 나는 공문을 경기우

감사京畿右監司성영成泳․ 수사水使이빈李蘋에게 보내 왜적들이 물러간 뒤에는 급히

강 속에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을 거두어 실수하는 일이 없이 다 한강에 모이도록

마련하라고 명령하였더니, 이때에 이미 도착한 배가 80여 척이나 되었다. 나는 곧

사람을 시켜 제독(이여송)에게 “배가 벌써 준비되었다.”고 알렸더니, 조금 뒤에 영

장營將이여백李如柏이 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강변으로 나왔는데, 군사들이 절

반쯤 강을 건넜을 때 해가 이미 저물려 했다. 이때 이여백은 갑자기 발병이 났다

고 칭하면서 이어 말하기를,

“성 안으로 돌아가서 발병을 고쳐야만 진격하겠다.”

라고 하며 가마를 타고 돌아갔다. 그러자 이미 한강의 남쪽으로 건너가 있는

군사들도 다 돌아와서 성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통분하

였지만 그러나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는 대개 도독(이여송)은 실제로는 왜적을

추격할 의사가 없으면서 다만 거짓말로 응하는 것처럼 속이는 수작이었다.

4월 23일에 나는 병이 나서 자리에 누웠다.

5월에 이제독李提督(이여송李如松)은 왜적을 추격한다면서 문경聞慶까지 갔다가 돌

아왔다.

송시랑宋侍郞(송응창宋應昌)은 비로소 패문牌文29)을 제독(이여송)에게 발송하여 그

로 하여금 왜적을 추격하게 하였다. 이때 왜적들은 떠나간 지 수십 일이나 되었

는데, 시랑(송응창)은 남들이, 자기가 왜적을 놓아 보내고 추격하지 않는다고 비

난을 할까 두려워한 까닭으로 이와 같은 행동을 하여 보인 것이나, 실상은 제독

(이여송)이 왜적을 두려워하여 감히 진격을 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이때 왜적들은 길에서 천천히 가면서 머무르기도 하고 혹은 가기도 하였는데,

우리 군사로서 연도를 지키던 자들도 다 왼쪽 오른쪽으로 자취를 감추고 감히 나

와서 공격하는 자가 없었다.

 

 

27) 崇禮門: 지금 서울의 남대문

28) 老爺: 중국말로 높고 귀한 분에 대한 존칭

29) 牌文: 옛날 중국 공문의 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