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69. 왜적을 막아낼 방도를 강구함

  • 관리자
  • 2021-10-10 오전 10: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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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1592) 4월에 왜적은 연달아 육지의 여러 고을을 함락시키니, 우리 군사

는 그 위풍만 바라보고도 그만 무너지고 흩어져 버려서 감히 맞싸우려는 사람이

없었다.

비변사備邊司의 여러 신하들은 날마다 대궐에 모여서 왜적을 막아낼 대책을 강구

하였으나 아무런 계책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건의建議하여 말하기를,

“왜적은 창칼[槍刀]을 잘 쓰는데, 우리는 굳건한 갑옷으로 막아낼 만한 것이 없

는 까닭으로 능히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두꺼운 쇠를 가지고 온몸을 둘

러 쌀 갑옷을 만들어 머리까지 그 형체가 보이지 않도록 하며, 이것을 입고 왜적

의 진중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왜적들은 가히 찌를 만한 틈이 없을 것이니, 우리

는 가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여러 사람들은 “그렇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공장工匠을 많이 모아서 밤

낮으로 철갑옷을 만들었다. 나는 홀로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말하기를,

“왜적과 싸울 때는 구름처럼 모였다가 새처럼 흩어지기도 하여 아주 빠른 동작

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인데, 온몸을 둘러싼 두꺼운 철갑을 입는다면 그 무게를

이겨 낼 수도 없고 몸도 또한 잘 움직일 수도 없을 터이니, 어떻게 왜적을 죽이

기를 바라겠는가?”

하였더니 며칠 후에 그것이 쓰기 어렵겠음을 알고 드디어는 그만두었다. 또 대

간臺諫은 대신을 청하여 만나보고 계책을 말하였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성을 내

면서 대신들의 계책이 없음을 지탄하였다. 그래서 좌상座上께서 “무슨 계책이 있는

가?”고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어찌하여 한강漢江가에 높은 누각을 많이 설치하고 적으로 하여금 올라오지 못

하게 만들고는, 높은 데서 적을 굽어보고 활을 쏘도록 만들지 않습니까?”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왜적의 총알[鐵丸]도 역시 올라올 수 없다던가?”

하니, 그 사람은 말없이 물러가 버렸는데,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서로 전하여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아! 군사는 일정한 형세가 없고, 전투는 일정한 법이 없는 것으로, 때에 따라

사변에 알맞은 전법을 마련하여 나아가고 물러서고 모이고 흩어지며, 기묘한 계교

를 내어 쓰는 것이 다함이 없어야 하겠는데, 이는 다만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의

능력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본다면 천 마디의 말이나 만 가지의 계교가

다 소용이 없고, 오직 한 사람의 뛰어난 장수를 얻는 데 있겠고, 그리고 조조의

진술한바 세 가지 계책(첫째로 지형을 얻는 것, 둘째로 군사들이 명령을 잘 복종

하고 잘 익히는 것, 셋째로 병기가 날카로운 것)은 더욱 절실히 요망되는 것이므

로 한 가지도 없어서는 안 된다. 그 나머지 어지러운 것들이야 무슨 도움이 되겠

는가?

대저 국가에서는 좋은 장수를 사병이 없을 때에 뽑아 두었다가 그런 장수를 사

변이 있을 때에 임명하여야 될 것으로, 이를 뽑는 데는 정밀함을 귀중히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경상도慶尙道수군 장군[水將]은 박홍朴泓과 원균元均이고, 육

군장수[陸將]는 이각李珏과 조대곤曺大坤이었는데, 이들은 벌써 장수감으로 뽑힌 사

람이 아니었다. 그 변란(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 순변사巡邊使와 방어사防禦使와

조방장助防將등이 모두 조정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내려왔었는데, 각각 마음대로

결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저마다 호령을 내리고, 나아가고 물러서는 것을

뜻대로 행하여 통솔이 되지 않아서 바로 ‘전쟁에 패하면 수레에 시체를 싣는다.’는

경계를 범하였으니, 일이 어찌 구제가 될 수 있었겟는가? 또 자기가 양성한 군사

를 자기가 쓰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쓰는 군사를 자기가 양성하지 않았으므로,

장병들이 서로 알지도 못하였다. 이는 다 군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크게 꺼리는

것이라, 어찌하여 앞 수레가 엎어졌는데도 뒤에서 고칠 줄을 알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도록 이런 잘못을 따르고,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사고가 없을 것을

바라는 것은 특히 요행을 바랄 따름이라 하겠다. 이것을 말한다면 그 말만 매우

길어지고 이를 한두 말로는 다할 수가 없다. 아아! 위태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