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64. 괴이한 일들

  • 관리자
  • 2021-10-02 오전 10:29:58
  • 3,368
  • 메일

두보의 시[杜詩]91)에,

장안성長安城92) 위의 머리 하얀 까마귀는 長安城頭頭自烏

밤이면 연추문延秋門에 날아와 울고 夜飛延秋門上呼

인가로 다니며 큰 집을 쪼아대니 又向人家啄大屋

고관들은 달아나 오랑캐를 피하네 屋底達官走避低

라고 하였는데, 이는 대개 괴이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임진년(선조宣祖25년, 1592) 4월 17일에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급보가 이르자

조정과 민간에서는 황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갑자기 괴이한 새가 대궐의

후원에서 울다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혹은 가까워졌다 혹은 멀어졌다 하며, 단 한

마리 새 울음소리가 성 안에 가득차서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밤낮으로 그 울

음소리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이와 같이 한 지 10일 후에 임금께서 피란길을

떠나셨고, 왜적이 도성으로 들어와서 궁궐宮闕과 종묘 사직[廟社]과 관청과 민간의

집들이 다 텅텅 비게 되었으니, 아아, 그 역시 매우 괴이한 일이라 하겠다.

또 5월에 내가 임금님을 모시고 평양平壤에 이르러 김내진金乃進의 집에 우거하였

는데, 김내진이 나에게 말하기를,

“연전年前에 승냥이가 여러 번 성 안으로 들어오고 대동강大同江물이 붉고 동쪽

가는 몹시 흐리고 서쪽가는 맑았었는데, 지금 과연 이런 변란이 있습니다.”

하였다. 이때 왜적은 아직 평양에 이르지 않았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서 아무

런 대답도 하지 않았으나, 마음 속으로는 좋지 않게 여겼더니, 얼마 아니하여 평

양성이 또 함락되었다. 대개 승냥이는 곧 등짐승이라 성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이는 마치 􋺷춘추春秋􋺸93)에 “구욕새[鸜鵒]가 와서 깃들이자 여

섯 마리 익새[鷁]가 날아가 버리고, 많은 순록[麇]에 물여우[蜮]가 있었다.”는 것처

럼 그 반응이 없는 것이 드무니, 하늘이 인간에게 계시한 것이 현저하며, 성인聖人

이 경계한 것이 깊으니 가히 두려워하지 않으리오?

또 임진년(1592)의 봄 ․ 여름 사이에 세성歲星94) 이 미성[尾] ․ 기성[箕]을 지켰는데,

미성 ․ 기성은 곧 연[燕]나라 분야라서 옛날부터 우리나라와 연나라가 같은 분야라

고 말하였다. 이때 왜적의 군사가 날로 가까워지므로 인심은 흉흉하고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루는 임금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복별[福星]이 방금 우리나라에 있으니 왜적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하였는데, 이는 대개 임금께서 이런 말을 빌어서 백성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이 뒤에 도성都城은 비록 잃어 버렸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는 능히 옛것대로 회복하여 옛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왜적의 우두머리인 풍

신수길[秀吉]도 또 마침내는 흉악하고 반역적인 계획을 다 부리지 못하고 저절로

죽어 버렸으니, 이 어찌 우연한 일이리오? 이는 대개 하늘의 뜻이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91) 杜詩: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시. 두보의 자는 자미(子美). 그의 시는 웅혼침통(雄渾沈痛)하

고, 충후(忠厚)의 정서가 풍부함. 􋺷두공부집(杜工部集)􋺸20권이 있음

92) 長安城: 당나라 때 서울

93) 春秋: 춘추시대에 공자가 지은 노나라의 역사서

94) 歲星: 오성(五星)의 하나. 곧 목성(木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