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후잡기錄後雜記
무인년(선조宣祖11년, 1578) 가을에 장성長星86)이 뻗쳤는데, 그 모양이 흰 비단
을 편 것처럼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향하여 돌아다니다가 몇 달 만에야 없어졌
다.
무자년(선조宣祖21년, 1588) 무렴에는 한강漢江의 물이 3일 동안이나 붉었다.
신묘년(선조宣祖24년, 1591)에는 죽산竹山태평원太平院뒤에 있는 한 돌[石]이 저
절로 일어섰다. 이때 통진현通津縣에서는 쓰러져 있던 버드나무가 다시 일어났는데,
민간民間에서는 거짓말이 돌기를 “장차 도읍을 옮길 것이다.”고들 하였다.
또 동해에서 나던 물고기가 서해에서 나더니, 고기가 점점 한강漢江에까지 이르
렀다.
해주海州에서 본래 생산되던 청어靑魚가 근 10년 동안이나 전혀 생산되지 않다가
옮겨가 요동바다[遼海]에서 생산되었는데, 요동遼東사람들은 이를 신어新魚라고 불
렀다.
또 요동팔참遼東八站에 사는 백성들이 하루는 까닭이 없이 서로 놀라며 말하기를,
“도둑들이 조선朝鮮으로부터 들어오고, 조선 왕자朝鮮王子의 십정교자十停轎子가 압
록강鴨綠江에 이르렀다.”
하고 전하여 서로 알려 말하니, 늙은이와 어린이는 산으로 올라가는 등 요란하
다가 며칠 만에야 안정되었다.
또 우리나라 사신이 북경北京으로부터 돌아오다가 금석산金石山의 하河씨 성을 가
진 사람의 집에서 자는데, 그 집의 주인이 말하기를,
“한 조선朝鮮통역관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 ‘너희 집에 3년 된 술과 5년 된 술
이 있다는데 아끼지 말고 마시며 즐겁게 놀아라. 오래지 않아서 군사들이 쳐들어
올 것이니 너희들은 비록 술이 있더라도 누가 그것을 마시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로 해서 요동 사람들은 조선이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하여 많이 놀라
고 의혹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런 사실을 아뢰니, 조정에서는 통역관이 반드시 말
을 만들어 가지고 일을 생기게 하여 본국本國을 무함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몇 사람을 체포하여 인정전仁政殿87)의 뜰에서 국문[鞠]하고, 압슬화형壓膝火刑88)
을 행했으나 다 불복不服하고 죽었다. 이런 것은 신묘년 무렵의 일이었다.
그 다음해(1592)에 드디어 왜변倭變89)이 일어났는데, 이것으로 큰 난리가 발생하
려 할 때 사람들은 비록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상한 조짐兆朕을 나타냄이 그
한 가지가 아님을 알았다. 더구나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고, 태백성[太白]90)이 하
늘에 뻗치는 이런 일이 없는 해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도 보통 일로
여겨왔다. 또 도성都城안에는 항상 검은 기운이 있었는데, 이는 연기도 아니고 안
개도 아니면서 땅에 서리어 하늘까지 닿았으며 이와 같은 것이 거의 10여년이나
되었다. 그 밖의 변괴는 다 기록하기 어려운데, 이는 하늘이 사람에게 알리는 바
가 심히 간절하다고 말하겠으나, 다만 사람이 능히 이를 살피지 못할 뿐이라고
하겠다.
86) 長星: 혜성을 말하는데, 이 별이 나타나면 병란이 일어난다고 전해짐
87) 仁政殿: 조선조 때의 정청(政廳). 어진 정사[仁政]를 베푸는 궁정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
88) 壓膝火刑: 죄인을 고문할 때 행하는 형벌. 압슬은 널판자로 무릎을 짓누르는 것이고, 화형은 불로
지지는 것임
89) 倭變 : 왜적의 침구로 인한 변란. 곧 임진왜란을 말함
90) 太白: 금성(金星)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