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52. 명나라 군사가 내원來援함

  • 관리자
  • 2021-09-07 오전 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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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조정에서는 병부시랑兵部侍郞형개邢玠57)를 총독군문總督軍門으로, 요동포정

사遼東布政司양호楊鎬58)를 경리조선군무經理朝鮮軍務로, 마귀麻貴59)를 대장大將으로 삼고,

양원楊元․ 유정劉綎․ 동일원董一元등이 서로 잇달아 우리나라로 나왔다.

정유년丁酉年(선조宣祖30년, 1597) 5월에 양원楊元이 3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먼

저 왔는데, 그는 서울에 며칠 동안 머무르다가 전라도全羅道로 내려가 남원南原에

주둔하여 지켰다. 대개 남원은 호남[湖] ․ 영남[嶺]의 요충이 되는 곳으로 성城도 자

못 견고하고 완전하였는데, 이는 지난날에 낙상지駱尙志가 또 성을 증축하여 지킬

만하게 만든 까닭이었다.

이 남원성 밖에는 교룡산성蛟龍山城이 있는데, 여러 사람들의 의논은 산성山城을

지키려고 하였으나, 양원은 본성本城을 지켜야 된다고 하면서 성 위에 담을 더 쌓

고 호를 팠으며, 호 안에 또 양마장羊馬牆60)을 베풀었는데, 밤낮으로 일을 돌려 하

여 한 달이 넘어 겨우 완성되었다.

 

 

 

57) 邢玠: 명나라 장수.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 있다가 정유재란 때 총독군문(總督軍門)으로 우리나라

에 와서 활약함

58) 楊鎬: 명나라 장수. 정유재란 때 경리조선군무(經理朝鮮軍務)로 구원병을 거느리고 왔으나, 울산성

공격에 실패하여 파면됨

59) 麻貴: 명나라 장수로 정유재란 때 제독(提督)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잘 싸워 양장(良將)이라 이름

60) 羊馬牆: 밖의 호(壕)인데, 작은 성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여장(女牆: 성 위에 쌓은 담)의 담을 세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