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국역 징비록

《징비록》의 말미에 쓰다〔書懲毖錄後〕 성호 이익

  • 관리자
  • 2020-12-15 오전 10: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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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의 말미에 쓰다〔書懲毖錄後〕 성호 이익

 
 

 

《징비록》의 말미에 쓰다〔書懲毖錄後〕 성호 이익

 

 

현인을 추천하면 후한 상을 받는 것이 옛 법도이다. 신하 된 이가 만약 현인이라면 그 현인이 죽는 순간 그가 하던 일도 끝이 난다. 하지만 현인을 추천한 경우라면 그 사람이 죽어 없어져도 현인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되므로 그 사람에게 더없이 후한 상을 내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漢)나라가 진평(陳平)의 한마디 계책으로 천하를 얻었음에도 그를 추천한 위무지(魏無知)에게 먼저 상을 내렸던 것이니, 전한(前漢) 시대에 인재를 얻는 것이 이를 계기로 번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나라의 적인걸(狄仁傑)은 자신의 부귀만을 도모하여 아무런 계책도 내세운 것이 없었지만 장간지(張柬之)를 천거한 이 한 가지 일만으로도 마침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낸 공을 인정받았다. 만약 적인걸이 인재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오왕(五王)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힘을 쓸 수 있었겠는가.

예전에 자공(子貢)이 신하들 가운데 현인이 누가 있느냐고 질문을 하자 공자(孔子)가 대답하기를 “제(齊)나라에는 포숙(鮑叔)이 있고 정(鄭)나라에는 자피(子皮)가 있다.” 하였다. 이에 자공이 다시 묻기를 “제나라에는 관중(管仲)이 있고 정나라에는 자산(子産)이 있지 않습니까?” 하니, 공자가 대답하기를 “너는 힘을 잘 쓰는 사람을 현인이라 들었는가, 아니면 뛰어난 인물을 추천하는 사람을 현인이라 들었는가? 나는 포숙이 관중을 천거하고 자피가 자산을 천거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포숙과 자산이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천거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하였다. 이처럼 성인의 가르침이 단청(丹靑)처럼 밝게 빛나고 있다.

사람들은 임진왜란 때에 서애(西厓) 유 선생(柳先生)이 나라를 위해 활약하여 공로를 세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선생에게 있어 조그마한 일에 불과하다고 나는 여긴다. 오히려 그보다 더 큰 공로가 있다. 당시에 나라를 잃지 않은 것은 오직 이 충무공(李忠武公)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충무공은 일개 비장(裨將)에 불과하였으니, 유 선생의 추천이 아니었더라면 단지 일반 병사들과 함께 싸우다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나라를 중흥하여 안정시킨 공은 과연 누구를 통해 이룰 수 있었겠는가. 근세에는 이러한 옛 법도를 실행한 예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현인을 추천하기는커녕 이러한 인물에 대해 시기와 질투나 하고 있으니, 슬픈 일이다.

 

 

書懲毖錄後

夫進賢受上賞。古之道也。爲人臣。苟使賢也。賢沒而事熄。進之以賢則人亡而賢猶在焉。賞之所以無尙也。是以漢有天下。以陳平之一言而先封無知。西京之得人。於斯爲盛。至於唐之狄公。親於其躳。無所猷爲。特因薦引張柬之一事。遂歸之取日虞淵之功。向非狄公之知人。雖有五王之賢。亦安所容其力哉。昔者子貢問人臣之賢。子曰齊有鮑叔。鄭有子皮。子貢曰齊無管仲。鄭無子産乎。子曰汝聞用力爲賢乎。進賢爲賢乎。吾聞鮑叔達管仲。子皮達子産。未聞二子之達賢己之才者也。聖人之訓。已炳若丹靑矣。人謂壬辰之變。柳西厓先生有奔走效勞。余則曰此在先生。猶是小節。抑有大焉。當是時。邦國不喪。獨有李忠武一人在也。始忠武卽一箇褊裨。非柳先生。只見捐命於行伍間而已。然則重恢奠安之功。果孰由而成乎。近世此道無聞。不惟不之進。又從而媢疾之。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