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讀宋史有感 幷序 독송사유감 병서
송사宋史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서 서문을 병기함
讀宋史有感 幷序
南渡後人才。當以李伯紀爲首。伯紀去而天下遂中分。哀哉。汴京雖陷。金人委之而去。李公使張所,傅亮收兩河。中原固自若也。汪,黃不足責。魏公攻伯紀。亦獨何哉。詩云靡哲不愚。豈亦天耶。余嘗以魏公功不能贖罪。以其黨汪,黃攻伯紀也。
남도후인재。당이이백기위수。백기거이천하수중분。애재。변경수함。금인위지이거。이공사장소,부량수량하。중원고자약야。왕,황부족책。위공공백기。역독하재。시운미철불우。기역천야。여상이위공공불능속죄。이기당왕,황공백기야。
(송宋나라가) 남쪽으로 천도한 이후의 인재라면 마땅히 백기伯紀 이강李綱을 으뜸으로 꼽아야 하리라. 백기가 퇴출되고 나서 송나라 천하는 마침내 양분되었으니, 아 슬프다! 도성인 변경(汴京 :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은 비록 함락되었으나, 금金나라 사람들은 그곳을 (장방창張邦昌에게) 위탁해 놓고 돌아가 버리자, 이공李公은 장소張所와 부량傅亮 등 두 장수로 하여금 양하兩河 지역을 점거토록 하니, 중원中原은 계속 이전과 같이 진정되었다. 왕백언汪伯彦과 황잠선黃潛善은 책망할 가치도 없지만, 위국공魏國公 진회秦檜가 백기伯紀 이강李綱을 배척하는 것은 또 어찌된 일인고! 시경에 이르기를, “그 어떤 명철한 사람도 어리석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였는데, 그게 어찌 또 하늘의 뜻이라 하겠는가! 나는 일찍이 위국공의 행적은 속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는바, 그의 당료 왕백언과 황잠선 등이 백기와 이강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其一
張收河北傅河東(장수하북부하동) 장소張所는 하북을 부량傅亮은 하동河東을 점거했는데,
兩地全收虜穴空(양지전수로혈공) 두 지역 전부 수복收復하고 나니 오랑캐 소굴이 공동화空洞化 됐다네.
誰遣小兒成戲劇(수견소아성희극) 누가 그 군인들 파견했는지 흡사 한 편의 희극 같았으니,
八陵回首更悲風(팔능회수경비풍) 팔릉八陵을 돌아보며 더욱 처량한 한풍寒風 맞았겠네.
其二
誰將魏公擬長城(수장위공의장성) 누군가 위국공魏國公 진회秦檜를 만리장성에 비교했는데,
壞卻長城亦魏公(괴각장성역위공) 의외로 만리장성 허문 것 또한 위국공 자신이었다네.
義士有心空望北(의사유심공망북) 의사義士는 의협심에 불타 북쪽하늘 바라보는데,
江波無賴自流東(강파무뢰자류동) 강물은 속절없이 절로 동쪽으로 흘러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