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서애선생 시

여기에 게시된 서애선생관련시는 서애선생 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한 류명희.안유호님의 "국역 류성룡시 1권~ 4권" 내용을 게시한 것입니다.

2-17 讀宋史有感 幷序 독송사유감 병서, 송사宋史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서 서문을 병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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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6 오전 8: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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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讀宋史有感 幷序 독송사유감 병서

       송사宋史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서 서문을 병기함
讀宋史有感 幷序

南渡後人才當以李伯紀爲首伯紀去而天下遂中分哀哉汴京雖陷金人委之而去李公使張所傅亮收兩河中原固自若也黃不足責魏公攻伯紀亦獨何哉詩云靡哲不愚豈亦天耶余嘗以魏公功不能贖罪以其黨汪黃攻伯紀也

남도후인재당이이백기위수백기거이천하수중분애재변경수함금인위지이거이공사장소부량수량하중원고자약야황부족책위공공백기역독하재시운미철불우기역천야여상이위공공불능속죄이기당왕황공백기야

 

(나라가) 남쪽으로 천도한 이후의 인재라면 마땅히 백기伯紀 이강李綱을 으뜸으로 꼽아야 하리라. 백기가 퇴출되고 나서 송나라 천하는 마침내 양분되었으니, 아 슬프! 도성인 변경(汴京 :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은 비록 함락되었으나, 나라 사람들은 그곳을 (장방창張邦昌에게) 위탁해 놓고 돌아가 버리자, 이공李公은 장소張所와 부량傅亮 등 두 장수로 하여금 양하兩河 지역을 점거토록 하니, 중원中原은 계속 이전과 같이 진정되었다. 왕백언汪伯彦과 황잠선黃潛善은 책망할 가치도 없지만, 위국공魏國公 진회秦檜가 백기伯紀 이강李綱을 배척하는 것은 또 어찌된 일인! 󰡔시경󰡕에 이르기를, 그 어떤 명철한 사람도 어리석지 않는 이가 없다고 하였는데, 그게 어찌 또 하늘의 뜻이라 하겠는! 나는 일찍이 위국공의 행적은 속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는바, 그의 당료 왕백언과 황잠선 등이 백기와 이강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其一

張收河北傅河東(장수하북부하동) 장소張所는 하북을 부량傅亮은 하동河東을 점거했는데,

兩地全收虜穴空(양지전수로혈공) 두 지역 전부 수복收復하고 나니 오랑캐 소굴이 공동화空洞化 됐다네.

誰遣小兒成戲劇(수견소아성희극) 누가 그 군인들 파견했는지 흡사 한 편의 희극 같았으니,

八陵回首更悲風(팔능회수경비풍) 팔릉八陵을 돌아보며 더욱 처량한 한풍寒風 맞았겠네.

 

其二

誰將魏公擬長城(수장위공의장성) 누군가 위국공魏國公 진회秦檜를 만리장성에 비교했는데,

壞卻長城亦魏公(괴각장성역위공) 의외로 만리장성 허문 것 또한 위국공 자신이었다네.

義士有心空望北(의사유심공망북) 의사義士는 의협심에 불타 북쪽하늘 바라보는데,

江波無賴自流東(강파무뢰자류동) 강물은 속절없이 절로 동쪽으로 흘러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