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서애선생 시

여기에 게시된 서애선생관련시는 서애선생 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한 류명희.안유호님의 "국역 류성룡시 1권~ 4권" 내용을 게시한 것입니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 어록 (징비록 중에서)

  • 관리자
  • 2020-06-22 오후 5:39:53
  • 755

1592(壬辰)년 4월 30일(음력) 새벽에 도성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한 어가는 요기도 못한 채 빗발 속에 종일을 움직여가서 저녁에 임진강을 건너,

5월 1일 동파역(東坡驛)에 이르러서야 겨우 요기 상을 대하고 나서, 어전회의가 열렸다.

 

선조는 어가가 어디에 머물 것인가 물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여러 신하 중에 도승지 이항복(李恒福)이 나서서, 의주(義州)에 가서 머물다가 조선 8도가 다 적에게 함락되면 명(明)나라에 내부(內附)하자는 주장을 마지않았다.

 

선조도 또한 “내부는 본래 나의 뜻이다,”라고 아예 나라를 포기할 생각을 먼저 하고 있었다.

 

이애 서애(西厓)선생은,

 

大駕離東土一步(대가이동토일보)

안되오, 어가가 한 발짝이라도 동토(東土)를 떠나면,

 

地朝鮮非我有也(지조선비아유야)
조선(朝鮮)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今東北諸道如故(금동북제도여고)
지금 동북지방(강원도,함경도)의 여전하고,

 

湖南忠義之士不(호남충의지사불)
호남의 충의지사(忠義之士) 들이 불안간 들고 일어날 터인데,

 

日峰起豈可遽論(일봉기기가거론)
어찌 선뜻 이런 일(나라를 포기하는 일)을 거론하시오!

 

라면서 그 논의를 결연히 제압하였다.

후일 이항복(李恒福)에게 전하기를 “이 말이 전파되어 인심이 와해되면 누가 수습한단 말이요” 라고 사람을 통하여 나무랐다.

 

懲毖錄(징비록)에서
尺寸不可 容易棄之(척촌불가 용이기지)
“우리 땅 한자, 한치도 적에게 넘겨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