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七月五日 風氣颯然 與子姪數輩 遊北林佛塔 令奴芟去荒穢 以火焚之 時風急火盛 須臾凈盡 林影婆娑 可以逍遙 明日次東坡上已出遊韻
칠월오일 풍기삽연 여자질수배 유북림불탑 영노삼거황예 이화분지 시풍급화성 수유정진 임영파사 가이소요 명일차동파상이출유운
칠월 초닷샛날, 바람기가 좀 잠잠해 지기에, 아들과 조카 그리고 그 또래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북림北林과 불탑佛塔에 놀러간 김에, 종으로 하여금 잡초를 베게 해서, 그것을 태워버리도록 했는데, 때마침 바람이 불어와서 불길이 세어져 잠깐 사이에 그 잡초들을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그렇게 하고 나니) 나무숲의 그림자가 어른어른 거리고 거닐 수 있게 되었다. 이튿날 소동파의 시 「삼짇날에 외출하여 유람하다 (上巳出遊)」를 차운하여 이 시를 짓는다.
秋風蕭蕭輕雨飛(추풍소소경우비) 가을바람이 솔솔 불며 가랑비 날리는데,
微涼早入前村塢(미량조입전촌오) 좀 서늘했지만 아침에 앞마을 산촌山村에 갔네.
興來幽尋不辭遠(흥래유심불사원) 그윽한 경치 탐색에 흥이 일어 먼 곳도 사양 않고 가는데,
牧豎農夫相戲侮(목수농부상희모) 목동과 농부는 서로 농지거리 주고받네.
古寺遺基石塔橫(고사유기석탑횡) 옛 절터에 석탑 한 기基가 측면에 있었는데,
細逕穿林日亭午(세경천임일정오) 오솔길 통해 숲을 지나오니 시간은 정오가 됐네.
林深境邃俗塵隔(임심경수속진격) 수림 무성하고 경관 심원하여 속세와 격리됐기에,
欲呼魚鳥相爾汝(욕호어조상이여) 물고기와 새들을 불러 친하게 사귀고 싶었네.
長松萬株遶江曲(장송만주요강곡) 큰 소나무 일만 그루 굽이도는 강 따라 우거지고,
碧蘿千丈蛟龍舞(벽라천장교룡무) 여라女蘿 덩굴 일천 장丈 얽혀 교룡蛟龍이 춤추겠네.
年深荊棘翳佳木(년심형극예가목) 해묵은 가시나무가 보기 좋은 나무 덮어서 가리길래,
剪剔寧論疲僕苦(전척영론피복고) 베 내라고 말하면서 종을 피곤하게 하였네.
嘗聞古人烈山澤(상문고인렬산택) 일찍이 옛사람이 산야를 태웠다는 소리 들었는데,
一炬燒荒吾亦主(일거소황오역주) 횃불 하나로 황폐한 것 태웠으니 나 역시 그 당사자일세.
淸陰生地石苔斑(청음생지석태반) 서늘한 음지의 바위에는 이끼 끼어 얼룩졌고,
野草閒花相媚嫵(야초한화상미무) 야생초와 들꽃은 서로에게 한들한들 아양 떠네.
冠童三四共盤桓(관동삼사공반환) 어른과 아이들 서넛이 함께 배회하다가,
坐久忘歸同藉土(좌구망귀동자토) 한참 앉아 귀가 생각도 잊은 채 제방에 자리 깔고 같이 있었네.
還思十載走風塵(환사십재주풍진) 귀향 생각한지 십 여 년 만에 벼슬길 떠나서,
老去始學樊須圃(로거시학번수포) 늙어서 배우기 시작한 게 농원경영일세.
三年澤國困漁父(삼년택국곤어부) 강변 마을에 삼년 사는 동안 이 늙은 어부 곤궁했지만,
一夢鈞天曾帝所(일몽균천증제소) 한 번은 꿈에 천궁天宮에서 천상天上의 음악도 들었었네.
悲歡已付泡影中(비환이부포영중) 애환은 이미 물거품 속으로 보내버렸으니,
杜門澄心看姹女(두문징심간차여) 두문불출하며 마음 청정淸靜하게 하는 걸 연단煉丹 하듯 하네
平生學道妄有意(평생학도망유의) 평생 도학을 배웠으나 망령되이 (벼슬길로 나아가는) 의지만을 지녔기에,
上下鳶魚竆仰俯(상하연어궁앙부) 하늘과 땅에는 솔개와 물고기도 자유자재 하건만 (나는) 어디에서도 안거安居하지 못하네.
邇來多病百無爲(이래다병백무위) 근래에 병이 잦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白石携歸親自煮(백석휴귀친자자) 백석白石 갖고 돌아와 친히 우려내어 마시려 했네.
鼎缺爐寒不成丹(정결노한불성단) 약탕기는 깨졌고 화롯불은 꺼져 연단煉丹도 못 만들고,
一篇遠遊徒虛語(일편원유도허어) 멀리 유람하며 시 한 수 읊는단 것도 결국 빈말 됐네.
時時率意輒孤往(시시솔의첩고왕) 근처에는) 언제나 내 맘대로 즉시 갈 수 있나니,
不論隣家與僧宇(불론인가여승우) 이웃집과 사원寺院은 말할 것도 없다네.
行歌白雪帶月歸(행가백설대월귀) 백운白雲을 노래하며 갔다가 달빛아래 돌아오는데,
絶勝東華候朝鼓(절승동화후조고) 절경絶景에 심취한 신선 동화東華가 등청登廳 북소리 기다릴까!
人生所貴在適意(인생소귀재적의) 사람이 살면서 귀한 것은 마음 넓게 가지는데 있나니,
坎止流行只如許(감지유행지여허) 위험 닥쳐 멈춰 섰다 갈 때도 이 같아야 할 뿐일세.
從知賞心不在遙(종지상심부재요) 심지心志 즐겁게 하는 걸 알고 보니 먼 곳에 있잖았는데.
伐木何須凌險阻(벌목하수능험조) 험지까지 올라가 벌목할 필요 있겠는가?
無官身輕是實語(무관신경시실어) 관직 없어 몸 가뿐해졌단 것이 참말인데,
客來賀我何須吊(객래하아하수적) 손님 와서 내게 축하하는 걸 애통해 할 필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