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서애선생 시

여기에 게시된 서애선생관련시는 서애선생 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한 류명희.안유호님의 "국역 류성룡시 1권~ 4권" 내용을 게시한 것입니다.

2-25 過彈琴臺有感。次朴昌世先生韻。幷序 과탄금대유감。차박창세선생운。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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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27 오후 3: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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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過彈琴臺有感次朴昌世先生韻幷序

과탄금대유감차박창세선생운병서

 

余在朝建議以爲都城以長江爲固而忠州居上流忠州不守則都城不可保往時申砬不知進據鳥嶺之險以固忠州而引賊入平地與戰於城下一敗塗地浹旬之間三都皆失守今當於鳥竹二嶺設險以備不虞又築城彈琴臺使可據守船運黃海道漁鹽遡流而上散糴山郡旣爲民利漸可儲置軍糧云云事幾就緖而余以譴去國其事俱罷今過其下獨前時貯魚鹽小草屋數間在耳古人云天下不如意事十常八九豈謂是耶昔朴先生祥牧此州有詩曰異境森羅不可探彈琴臺下水如藍文章强首無遺墓翰墨金生有廢庵落日上江船兩兩斜風盤渚鷺三三陶詞莫遣佳人唱太守聞來面發慚次其韻以寓余意云

 

나는 조정에서 도성都城[서울]은 남한강을 이용해서 견고하게 방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충북 북부 가운데 위치한) 충주忠州(남한강의) 상류에 위치하니, 충주를 수비하지 못하면, 도성은 보전할 수 없다고 건의하였다. 이전에, 신립申砬(경북 문경聞慶과 충북 괴산槐山사이) 조령鳥嶺의 험준한 지역으로 전진해서 (방어진지를) 점거한 다음 충주를 견고하게 방어할 줄 모르고, (후퇴하여) 적을 평지로 끌어들여, 적과 (충주의 탄금대彈琴臺) 성 아래에서 격전을 치른 나머지, 처절하게 패배하여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 (불과) 열흘 사이에, (상주尙州, 문경聞慶, 충주忠州 ) 세 곳의 큰 고을을 모두 지켜내지 못했다.

지금은 조령과 (경북 풍기읍豊基邑과 충북 단양군丹陽郡 사이의) 죽령竹嶺 두 고개에 파수를 보고,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대비하고 있으므로 걱정할 것 없다. 또한 탄금대彈琴臺에도 축성하여, 황해도의 생선과 소금을 배로 운반하여, 물길을 따라 상류로 가서, 산촌에 위치한 고을에 미곡을 공급하도록 굳게 지키고 있으니, 이것은 백성의 편익을 위한 것이었으며, 군량미 같은 것도 점차 비축할 수 있게 되었다.

일처리를 타당하게 안배했지만, 내가 견책을 받고 조정에서 물러나면서, 그 일은 모두 중지되었고, 지금 내가 그 아래를 지나가는데, 내가 지난 날 생선과 소금을 비축했던 초가 몇 채가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천하에 뜻과 같지 않는 일이, 보통 열에 여덟아홉은 된다고 하였는데, 어찌 (나의) 이 일을 두고만 이른 것이겠는!

옛날에 박상朴祥 선생이 이곳 충주에 목사牧使로 있을 때 시를 읊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

빼어난 수림 경관 다 볼 수 없지만,

탄금대 아래 강물 쪽빛같이 푸르네.

문장가 강수强首는 무덤조차 남아 있잖고,

명필 김생金生은 황폐한 암자에 모셔졌네.

석양 무렵 강가에 배 두세 척 떠 있고,

바람 부는 물가에는 백로 서너 마리만 노니네.

라고 읊었다. 그 시의 운에 따라서 내 뜻을 기탁하여 여기 한 수 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