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

서애선생 유적

풍산류씨수동재사(豊山柳氏壽洞齋舍)

  • 병산서원
  • 2008-06-23 오후 12:48:05
  • 332,001

 



경북민속자료 제127호(2001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리 50

 

이 재사(齋舍)는 원래 서애 선생의 묘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아들 유초(柳初)가 지은『유천선생유고(柳川先生遺稿)』의 「상로재기(霜露齋記)」에 의하면, 서애 서세[逝世] 후 5년이 되는 1611년(광해군3) 승려 포우(甫右)의 도움으로 재사를 짓고, '상로재(霜露齋)' 라는 현판을 달았다고 한다. 여러 차례 중수를 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묘소는 손자인 졸재(拙齋) 원지(元之)에 의해 이장(移葬)되고 그 자리에는 졸재(拙齋)의 묘가 조성되었다.

 

재사는 정면 8칸, 측면 7칸 규모의 홑처마 '□'자 형 서산각지붕집이다. 1600년대 초반에 2칸으로 지었던 것을 1600년대 중반에 지금과 같은 규모로 증축했다고 전해진다. 전체적으로 19세기 전후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는 재사 건물로 옛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수동재사는 현재까지도 재실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북쪽 건물채의 마루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상로재(霜露齋)' 라고 쓴 큰 글씨의 현판과, '상로재기(霜露齋記)' 편액이다.

 

'상로재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력 정미년(1607년)에 우리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체를 수동 산에 모셨다. 이곳은 새로 잡은 터이다. ...산 밑에 집을 지어 묘소를 수호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평소부터 잘 아는 포우라는 스님이 우리의 생각을 알고 건축에 착수하였으나 힘이 부족하여 5년 만에 겨우 두 칸을 마련하였다. 공사를 마치고 나에게 이르기를, “집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옛날부터의 법도이니 그대가 이름을 짓도록 하시오” 하였다... 그리하여 서리(霜)와 이슬(露), 두 글자를 써서 현판을 달기로 하였다."

 

『예기』에 “봄에 이슬이 촉촉이 내리거나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마다 그리워한다.”는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