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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懲毖錄)

병산서원

 

 

 

 - 1책, 필사본, 국보 제 132호(1969년)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서 도체찰사(都體察使)를 겸하고 군무(軍務)를 지휘하였던 서애 선생이 조정에서 물러나 귀향하여 정리한 저술 중 하나이다. 임진왜란사를 연구함에 있어서는 가장 대표적인 기본 사료(史料)가 된다.

 

1592년(선조25)에서 1598년까지 7년간의 기록으로,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 일본과의 교린관계(交隣關係)를 비롯하여, 백성들의 항쟁, 명나라의 구원병 파견 및 제해권의 장악에 대한 전황(戰況) 등이 가장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징비(懲毖)’란『시경(詩經)』 주송(周頌) 소비장(小毖章)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서애 선생이 직접 밝히고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와 겨레에게 이러한 비참한 전화(戰禍)가 또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참회와 염원으로 그 수난상을 기록하고 이를 『징비록(懲毖錄)』으로 이름지었던 것이다.


필사본『징비록』은 조수익(趙壽益)공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시, 필자 손자의 요청으로 1647년(인조25)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그 이전인 1633년에도 셋째 아들인 수암(修巖)공이『서애선생문집』을 간행할 당시 그 속에 수록한 바 있다.

 

이 책은 1695년(숙종21년) 일본 경도 야마토야(大和屋)에서도 중간되었는데, 동왕 1712년부터는 나라에서 『징비록』의 일본 유출을 금지하는 명을 내리기도 했을 정도로 소중한 사료로 평가받았다.

 

1936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제11집에 『초본징비록』이란 제목으로 300부를 영인한 일이 있으며, 1958년 성균관대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한 『서애집』말미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난중일기』와 함께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평가됨은 물론이거니와, 호방한 서애의 자필이란 점에서 그 가치가 더해진다. 하회마을 내 ‘영모각’에 소장되어 있다.

 


1. 징비록(懲毖錄)
 -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 27.4cm×26.4cm

 

출처: 문화재청 국가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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