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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지정사와 연좌루(遠志精舍, 燕坐樓)

병산서원


   서애 선생이 부친상을 당하여 잠시 조정에서 물러나 있을 때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건물들이다. 조선 선조 6년(1573)에 세워졌다고 전해지며, 하회마을 북촌의 화천과 부용대를 감상할 수 있도록 북쪽을 향하여 정사와 누정이 자리잡고 있다.
 

  원지정사는 ‘一’자형 평면 구조의 맞배지붕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이다.  북향한 평면의 동쪽 끝에 1칸의 대청을 두고 나머지 2칸은 온돌방을 두었는데, 방 사이는 장지로 나누었다.  앞쪽으로는 반 칸 짜리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구조는 어느 정도 다듬은 막돌쌓기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으며 정면에 두리기둥 4개를 세웠다.  납도리에 5량 가구의 홑처마 구조로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정사의 서쪽으로는 누정인 ‘연좌루’가 자리하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 크기로 팔작지붕집이다. 계자난간을 두른 누마루에 오르면 강가의 소나무 숲과 화천 건너편 부용대, 옥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8호)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장대석을 기단부로 하여 막돌 초석을 놓고 1층은 다각기둥, 2층은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2층에는 중앙기둥을 없애 넓은 공간이 되도록 하였다.  기둥 윗몸에 주두를 놓은 다음 쇠서를 내고, 다시 주두 위에 걸친 보머리를 쇠서모양으로 하여 마치 2익공처럼 꾸며놓은 5량 가구의 홑처마 구조이다.  팔작지붕과 추녀 끝의 곡선이 제비를 닮았다 하여 연좌루(燕座樓)라고 부른다.

 

  특히 원지정사는 서애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정양(靜養)을 위해 자주 은거했던 곳으로 매우 뜻 깊은 장소이다.  '원지(遠志)'는 "處卽爲遠志, 出卽爲小草" 라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중요민속자료 제 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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